백신 배포 확대와 대규모 부양책 덕분에 미국의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 작년 말 뉴욕 맨해튼 중심가의 식당 야외 테이블 모습. 뉴욕=조재길 특파원
백신 배포 확대와 대규모 부양책 덕분에 미국의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 작년 말 뉴욕 맨해튼 중심가의 식당 야외 테이블 모습. 뉴욕=조재길 특파원
<미국 국무부 산하 뉴욕 외신기자센터(FPC)는 최근 월스트리트의 투자 전문가들과 연속 간담회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월가의 진짜 전문가들이 분석하는 미국 및 세계 경제 전망, 투자 전략 등을 시리즈로 소개합니다.>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간체이스의 루이스 오게너스 신흥시장 리서치 센터장이 “올해 중국 경제 성장률이 9.4%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국 정부가 설정한 ‘6%대’보다 훨씬 높을 것이란 관측이다.

20여년 간 같은 은행에서 신흥시장 동향을 연구해온 오게너스 센터장은 최근 뉴욕 외신기자센터가 마련한 간담회에서 “중국 경제는 이미 과열 신호를 보내고 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중국이 올해 9%대 성장을 달성하면, 2011년(9.6%) 이후 10년 만이 된다.

오게너스 센터장은 “중국 정부가 작년 상당한 규모의 정책 지원을 제공하면서 예상과 달리 2.3% 성장하는 데 성공했다”며 “올해 경제 규모가 더 확대될 것이기 때문에 당국은 자산 거품이 발생하는 걸 차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성장은 한국 등 주변국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란 진단이다.

오게너스 센터장은 “한국과 대만, 홍콩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중동 등이 이미 밀접한 공급망으로 연계돼 있다”며 “특히 한국과 대만은 중국 본토의 경기 흐름과 완전히 일치하는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은 지난 20년동안 다른 나라에서 무엇을 만들든 더 싸게 제조한다는 ‘세계의 공장’ 역할을 자처했고 톡톡히 효과를 봤다”며 “하지만 자국 내 임금이 오르면서 이 성장 모델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중국 정부가 내세운 새로운 전략이 내수 집중형이란 설명이다.

오게너스 센터장은 “미국에선 80%에 가까운 국내총생산(GDP) 대비 소비 비중이 중국에서는 50% 미만”이라며 “한 자녀 정책 때문에 저임금 모델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소득 수준이 개선됐기 때문에 내수 집중은 충분히 설득력 있는 전략”이라고 했다. 따라서 해외 기업들은 중국의 공급 사슬에 기대기보다 중국에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중국의 서비스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지난달 급등했다. 트레이딩이코노믹스 제공
중국의 서비스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지난달 급등했다. 트레이딩이코노믹스 제공
오게너스 센터장은 “중국에선 불필요한 다리나 공항을 건설하고 직원을 계속 고용하는 등 과잉 투자의 부작용을 경험하고 있다”며 “올해가 지나면 연평균 4~6%의 성장률에 적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정도의 ‘완만한’ 성장률이 중국 경제엔 더 도움이 될 것이란 진단이다.

그는 “작년 5.0% 위축됐던 세계 경제는 올해 5.6% 성장으로 반전할 것”이라며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신흥 시장만 본다면 올해 6.1%, 내년엔 4.2%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신흥 경제 성장률의 경우 다소 상향 조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올해 성장률이 6.1%보다는 6.6% 쪽에 가까울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신흥 시장 중에선 인도의 성장률이 독보적일 것이란 진단이다. 오게너스 센터장은 “인도 은행들은 모두 정부가 소유하고 있거나 직접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정책을 펴기가 쉽다”며 “올해 인도 성장률이 13.6%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신흥국 중에서도 회복 속도 면에서 더딘 곳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봤다. 대표적인 곳이 남미다.

오게너스 센터장은 “상당수 신흥국에선 올해 말은 커녕 내년 상반기에도 백신 접종률이 60%를 밑돌 수도 있다”며 “남미 국가들은 연말이 돼도 작년 1월 수준의 경제를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 미국 경제는 잠재 성장률(1.5~2.0%) 대비 3배가 넘는 6%대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란 게 오게너스 센터장의 얘기다. 무엇보다 적극적인 부양책 덕분이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 미 중앙은행(Fed)은 재무부 채권과 주택저당증권(MBS)만 매입했는데 이번엔 일반 채권으로 범위를 대폭 확대했다”며 “주식 부동산 등에 거품이 발생했다는 시각이 있지만 Fed의 설계 아래 진행된 가격 상승은 거품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오게너스 센터장은 “Fed가 인플레이션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수 차례 밝혔지만 올 3분기 중 물가 상승률이 3.3%에 도달할 수 있다”며 “시장엔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이유로 Fed가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등 통화 정책 정상화를 시작해야 할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오게너스 센터장은 미 국채 금리가 오르면서 신흥 시장에도 타격을 줄 것으로 봤다. 글로벌 유동성이 미 채권 시장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Fed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더라도 시장이 자체 테이퍼링에 나서도록 압박할 수 있다는 의미”라며 “국채 금리가 계속 오르고 신흥 시장의 자금 이탈이 시작되면 Fed는 강한 테이퍼링 압력을 받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루이스 오게너스 JP모간체이스 리서치센터장이 최근 미국 뉴욕 외신기자센터 기자들과 화상 인터뷰하고 있다. 줌 캡처
루이스 오게너스 JP모간체이스 리서치센터장이 최근 미국 뉴욕 외신기자센터 기자들과 화상 인터뷰하고 있다. 줌 캡처
오게너스 센터장은 바이든 정부의 외교 정책이 전임자인 트럼프 대통령 때와 크게 다를 것으로 예상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관세를 주요 외교 정책 수단으로 삼지는 않겠지만 이미 부과한 관세를 인하하는 쪽으로 움직이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외교 정책의 관심은 큰 틀에서 지적재산권 보호와 인권 문제, 미국 기업의 중국 진출 방식 등으로 옮아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올해 유럽 경제 움직임과 관련, 오게너스 센터장은 “코로나가 재확산하고 있는 유럽은 2~3분기부터 강하게 반등하기 시작할 것”이라며 “백신 보급이 빠른 영국의 성장 전망이 다른 곳보다 밝다”고 했다. 그는 올해 유럽 경제가 5.7%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오게너스 센터장은 1997년 JP모간에 합류한 뒤 신흥시장을 집중 연구해 왔다. 현재 13개국에서 활동하는 70여명의 연구원을 통솔하고 있다. 뉴욕대(NYU)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같은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세계은행에서 연구원으로 일한 적이 있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