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정오 가까이 되어 비가 멎었다. 태양은 구름을 가르고 그 따사로운 얼굴을 내밀어 그 빛살로 사랑하는 바다와 대지를 씻고 닦고 어루만졌다. 나는 뱃머리에 서서 시야에 드러난 기적을 만끽할 수 있도록 나 자신을 버려두었다.”(《그리스인 조르바》 중)

요트를 타는 사람들은 그리스인 조르바를 꿈꾼다. 그리스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작품 《그리스인 조르바》에 등장하는 조르바는 ‘디오니소스적 인간’이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 광산 노동자로 일하면서도 늘 당당하다. 그의 영혼은 자유롭다. 세상의 시선 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순간순간 본능이 이끄는 대로 살아간다. 작품 속 화자인 나는 크레타 출신의 젊은 지식인.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절제된 엘리트다. ‘아폴론적 인간’인 그는 조르바를 동경한다.

요트는 한때 부와 탐욕의 상징이었다. 1940년 출간된 프레드 쉐드의 《고객의 요트는 어디에 있는가》엔 이런 장면이 나온다. 관광객을 이끌고 월가를 돌아보다 맨해튼 남쪽 배터리 파크에 도착한 가이드가 정박 중인 멋진 요트를 가리키며 말한다. “저 배들이 은행가와 주식중개인의 요트랍니다.” 그러자 관광객이 묻는다. “그러면 고객들의 요트는 어디에 있나요?” 비뚤어진 탐욕에 대한 일침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어서면 요트를 탄다고 한다. “일찍 은퇴하고 요트 여행을 즐기며 살고 싶다”는 로망을 품은 사람도 많다. 요트는 문명의 질서 속에 쉼 없이 달려온 아폴로적 현대인의 심연에 잠겨 있는 조르바를 깨우는 오브제다.

2015년 마리나법 개정 이후 국내에서도 요트족이 늘고 있다. 그들에게 ‘요트는 탐욕의 상징’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레저고, 누군가에겐 가족과 함께 주말을 보내는 별장이다. 어떤 이에겐 취미로 시작한 요트가 사업이 되고, 직업이 됐다. 드물지만 아파트 대신 요트를 사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에게 요트는 집이다.

카잔차키스는 조르바를 통해 “인간은 결국 자유”라고 했다. 조르바는 자유의 알레고리다. 다양한 의미가 있겠지만 요트가 상징하는 것도 결국 ‘자유’다. 물과 바람을 타고 드넓은 바다를, 세계 곳곳을, 내 영혼 구석구석을 누비는 자유. 누구나 인생의 어느 순간 한 번쯤은 꿈꾸는 그런 자유 말이다.

국내 유통 요트 대부분 1억원 이하…동호회서 공동구매도
직접 조종하려면 면허증 필수…年 1000만원 수준 유지비 고려해야

지난 2일 경인 아라뱃길 아라마리나. 호텔과 물류센터 등 대형 건물 틈새에 선박들이 정박한 해상 계류장이 있었다. 흰 돛을 펼친 요트가 즐비한 풍경은 이국적이었다. 마치 그곳만 동떨어진 채 다른 시간이 흘러가고 있는 듯했다.

우리가 승선한 요트는 프랑스 요트회사 라군이 만든 카타마란(쌍동선) ‘라군40’. 계류장을 벗어나 물살을 가르며 넓은 바다로 나갔다. 갑판 위 빈백에 앉아 바닷바람을 맞았다. 일상의 헛되고 어지러운 소음이 파도처럼 부서져 바람결 사이로 흩어졌다. 그 순간만은 오직 나와 물과 바람뿐이었다.

요트의 매력에 빠져 요트 유통업체를 창업한 오현수 IGE요트 대표(44)의 말이 떠올랐다. “신나게 달려 바다 한가운데까지 간 뒤 동력을 끄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집니다. 바람에 몸을 맡기면 세상만사 잊게 되는 힐링의 시간이 찾아오죠.”

‘바람 타고 질주’ 요트의 시작은

요트란 상선, 어선, 군함 등 업무 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업무용 배가 아니라 유람, 경주 등에 쓰이는 범선 또는 동력선을 말한다. 바람을 주동력으로 사용하는 선박을 ‘요트’, 엔진을 주동력으로 쓰는 선박을 ‘보트’라고 불렀으나 최근 엔진을 장착한 요트가 늘면서 구분이 모호해졌다. 돛과 바람에 의해 움직이는 작은 ‘세일링 요트’부터 엔진을 장착한 ‘파워요트(보트)’, 낚시보트, 영화 등에서 호화 파티를 벌일 때 자주 등장하는 ‘슈퍼요트’까지 모두 요트의 범주에 들어간다. 선형 수에 따라 선형이 1개인 요트는 ‘모노헐’, 2개는 ‘카타마란’, 3개는 ‘트리마란’이라고 한다.

바람을 이용한 돛단배의 역사는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그 기원이 명확하지 않다. 근대적 의미의 요트는 17세기 해양 강국이었던 네덜란드에서 시작됐다. 네덜란드 해군 소속의 작은 쾌속선으로 공무원이나 장교의 심부름을 수행하거나 해적을 추격하는 데 쓰였다. 이 무렵 아버지 찰스 1세의 처형으로 네덜란드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찰스 황태자(찰스 2세)가 야트를 즐긴 것이 놀이로서 요트의 시초다. 영어 요트(yacht)가 ‘사냥’을 뜻하는 네덜란드어 야흐트(jacht)에서 유래한 배경이다.

요트 선주가 되려면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라지만 ‘요트=부자들의 사치품’이라는 편견은 남아 있다. 최근 요트 동호회 등의 활성화로 요트가 대중화되면서 이런 편견이 깨지기 시작했다. 한국수자원공사의 자회사인 워터웨이플러스 마리나사업부 이범규 대리는 “최근 동호회를 만들어 함께 요트 한 척을 사서 즐기는 젊은 직장인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요트를 몰기 위해선 면허증이 필요하다. 동력의 유무(돛으로 가느냐, 엔진으로 가느냐)에 따라 따야 하는 자격증도 달라진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해마다 1000여 명이 요트 조종 면허를 받는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대부분의 요트는 일본에서 들여온 중고 요트로, 가격은 차 한 대 값 정도다. 1억원 이하의 20~30년 된 요트가 많다. 새 요트 가격은 스펙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자동차에 비유하면 아우디, BMW급에 해당하는 새 요트 가격은 크기에 따라 3억~15억원 정도. 국내에서 많이 거래되는 새 요트는 프랑스 베네토, 라군, 발리, 미국 헌터, 독일 바바리아의 요트다. 세계적인 부호나 셀럽들이 레저 목적으로 보유하는 ‘슈퍼요트’ 가격은 100억~수천억원대에 이른다.

요트를 살 때는 유지비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34피트(약 10m) 요트 기준으로 해상 계류비는 월 40만~80만원, 연간 약 500만~900만원이다. 1년에 한 번 뭍으로 들어올려 선체에 붙은 조개를 떼어내고 칠을 다시 하는 비용까지 합하면 연간 유지비는 최소 1000만원 이상이 든다.

김포=전설리/정지은/정소람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