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국가안보 및 경제 보좌관들이 글로벌 반도체 업체를 백악관으로 초청하는 등 미국 중심의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어서다. 삼성전자가 미국 정부의 계획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경우 독자적인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 중인 중국과 유럽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4일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조 바이든 행정부는 오는 12일 주요 글로벌 반도체 기업 관계자를 백악관으로 초청한다. 반도체 칩 부족 현상을 점검하고 해결책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이 참석하는 이날 회의는 제너럴모터스(GM) 등 자동차 업체 외에 삼성전자를 비롯한 글로벌 반도체 업체 등도 초청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의 고민은 미국 기업에 대한 반도체 우선 공급이나 미국 내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공장 증설을 공개적으로 ‘압박’받는 자리가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올 들어 자동차용 반도체 공급 부족이 심각해지면서 GM 북미공장이 감산에 들어갔고, 포드 등 다른 완성차 업체들도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시장정보업체 IHS마킷은 1분기 반도체 공급난에 따른 자동차 생산 차질 물량이 100만 대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美편에 서라"…백악관 초청받은 삼성전자 '곤혹'
미국의 장기적인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관한 논의도 이뤄질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에서 차량용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하지만 파운드리 시장 전체로 보면 대만 TSMC에 이어 2위다. D램과 낸드플래시 시장에선 압도적인 점유율 차이로 1위를 달리고 있다. 삼성전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미국의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 프로젝트의 방향이 바뀔 수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파운드리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엔 텍사스와 뉴욕, 애리조나 주정부와 파운드리 공장 증설 투자 관련 협상을 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에 적극적으로 동참해달라고 당부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미 윤곽이 드러난 파운드리 공장 증설 외에 추가 투자를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백악관의 초청과 관련해 삼성전자 측은 말을 아끼고 있다. 아직까지 회의에 참석해달라는 요청이 없었다는 게 공식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로선 중국과 유럽 정부는 물론 미국 이외 지역 대형 거래처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회의에 참석하더라도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무슨 약속을 했는지 등을 드러내놓고 얘기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