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SK인베스트먼트는 지금까지 남아있는 벤처캐피털(VC) 중 가장 오래된 바이오 기업 전문 VC다. 아직 가치가 제대로 평가되지 않은 초창기 바이오 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LSK인베스트먼트의 설립자이자 VC 바이오 심사역 1세대로 꼽히는 김명기 대표를 만났다.

“시장을 바라볼 땐 긍정적으로, 투자할 기업을 고를 땐 보수적으로.”
김명기 LSK인베스트먼트 대표는 본인의 투자관을 이렇게 요약했다. 당초 한국의 바이오 시장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가 있기 때문에 바이오 투자를 업으로 하는 VC도 직접 설립했다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김 대표는 국내 바이오업계의 성장을 한국 영화업계에 빗댔다. 그는 “과거엔 스크린쿼터제 등 정책으로 보호해야만 했던 한국 영화업계가 이젠 세계를 호령하는 시대가 됐다”며 “K-바이오 또한 과실을 거둘 때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잠깐 동안만 ‘반짝’ 하는 스타플레이어 한두 곳이 나오는 게 아니라 바이오산업에 대한 꾸준한 투자로 업계의 전체 역량이 상승했다고도 했다. 한국 영화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된 이유가 천재 감독 한둘의 출현이 아닌 국내 영화업계 전반의 역량이 쌓인 덕분인 것과 같은 이치란 얘기다.

하지만 낙천주의자일 것만 같던 김 대표도 투자할 기업을 고를 땐 비관론자로 180도 탈바꿈하곤 한다. 아직 다른 VC의 손을 타지 않은 초기기업을 찾아 투자하다 보니 으레 ‘이게 되겠어?’라는 색안경을 끼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투자받으면 2년 내로 다음 투자를 받아야 할 텐데 그때까지 마일스톤 달성이 되겠습니까’, ‘기업가치도 지금보다 적어도 2배는 뛰어야 할 텐데요’ 같은 현실적인 질문을 계속 던집니다. 여기에 명확한 답을 줄 수 있는 기업에만 투자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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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바이오 전문 투자 VC

1997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미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김 대표는 투자업계에 입문하기에 앞서 LG화학에서 3년 반 동안 연구원을 지냈다. 2000년 큐캐피탈파트너스(옛 TG벤처) 바이오심사역으로 입사하며 처음 투자업계에 발을 디뎠다. 이듬해인 2001년엔 한솔창업투자로 이직했다. 당시엔 기술특례 상장제도가 도입되기 이전인 만큼 매출과 영업이익을 내는 바이오테크 기업 위주로 투자했다. 김 대표는 “효소를 만드는 아미코젠, 투명 필름을 제조하는 아이컴포넌트 같은 기업에 투자했다”고 말했다. 아이컴포넌트는 2008년, 아미코젠은 2013년 코스닥시장에 상장했다.

김 대표는 2005년 인터베스트로 둥지를 옮긴 뒤 약 11년 후인 2016년 4월 LSK인베스트먼트를 설립했다. LSK인베스트먼트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바이오 전문 VC로 꼽힌다. 김 대표는 “기술특례 제도를 통해 매출이나 영업이익을 내지 못하는 바이오 기업도 기업공개(IPO)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바이오 기업 투자를 해보자는 생각에 VC를 직접 설립하게 됐다”며 “최근 바이오 스타트업을 설립하는 LG화학 출신들이 많아 이전 근무 경험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빈티지’ 좋던 그 시절은 가고

“빈티지가 참 좋은 시절이 있었죠.”
바이오 기업에 투자하면 상대적으로 돈을 벌기 쉬운 시절이 있었더란다. 2013~2015년의 이야기다. 바이오 기업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내면서 김 대표가 창업을 결심한 시기이기도 하다. 김 대표는 “당시 인터베스트에서 2013년 조성한 1000억 원 규모 제약펀드를 운용했는데 2014년, 2015년 바이오 업계의 장이 좋아 큰 수익을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바이오업계에 투자한 펀드 대부분이 좋은 수익을 내던 시기라고도 했다. 알테오젠과 펩트론, 엔케이맥스(옛 에이티젠) 등이 상장한 것도 이때다. 하지만 비상장 바이오 종목에 투자하면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입소문이 투자업계에 퍼지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이전까지 바이오는 거들떠보지 않던 VC들까지 투자에 뛰어들며 비상장 바이오 기업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김 대표는 “상장을 앞두고 진행한 투자(프리IPO)에 VC들이 달려들다 보니 비상장사의 몸값이 상장사보다 더 높이 뛰더라”며 “이렇게 비상장사들의 몸값이 오른 상태에서 어떻게 투자를 해야 하나 고민하다 초기 바이오기업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갖게 됐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바이오 전문 VC를 설립하게 된 것도 초기 바이오기업을 대상으로 제대로 된 투자를 하기 위해서다. 그는 “초기기업은 검증이 안 됐기 때문에 결국 우리가 검증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바이오 및 제약 관련 전공자들만 모아 LSK인베스트먼트를 설립했고 초기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LSK인베스트먼트의 바이오 심사역은 총 7명으로 구성됐다. 김 대표 본인을 포함해 박사 3명, 석사 2명, 학사 2명이다. 이 중 바이오 전공자가 6명, 경제학 전공자가 1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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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K인베스트먼트가 가장 많은 투자수익을 올린 기업은 지난해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SCM생명과학이다. 2018년에 20억 원을 투자해 50억 원을 회수했다. 설립 첫해인 2016년엔 비상장사인 아크로스와 에스바이오메딕스에 각각 10억2100만 원, 2억2000만 원을 투자해 11억3400만 원, 5억9300만 원을 회수했다. 수익률은 각각 11%, 169%였다.

어떤 기업에 투자했나

몸값이 이미 오를 대로 오른 기업들 대신 초기기업을 들여다보자니 예상대로 문제가 생겼다. 무슨 기준으로 어떤 기업에 투자해야 할까. 김 대표는 “결국 기업에서 낸 논문 속에 답이 있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 수술 솔루션을 개발하는 휴톰은 LSK인베스트먼트가 논문을 보고 초기 투자에 나선 기업 중 한 곳이다. 김 대표는 “휴톰의 개발자는 전 세계에서 위암 로봇 수술을 가장 많이 한 분으로 손꼽히는 데다 학계에서 인정받는 논문을 여러 편 쓰셨다”며 “기업이 보유한 기술력에 확신을 갖고 투자를 집행했다”고 말했다.

바이오스퀘어 또한 이 회사 연구진의 연구성과에 주목해 LSK인베스트먼트가 투자한 기업이다. QLED TV에 쓰이는 퀀텀닷 양자점은 소수성 성질 때문에 이전까지 생물 소재로 사용하기 어렵다고 알려져 있었다. 김 대표는 “소수성 소재를 친수성으로 바꿀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진단기기에 응용할 수 있도록 했다”며 “퀀텀닷에 붙인 항체가 항원과 결합하면 빛을 내도록 했는 데 이 빛이 TV처럼 선명해 이전에는 달성할 수 없었던 민감도를 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적 돌파구(breakthrough)가 될 수 있는 데다 시제품도 개발 중이어서 성공 가능성도 높다고 판단해 투자했다”고 설명했다.

LSK인베스트먼트의 포트폴리오는 50%를 의약품 개발회사, 나머지 50%를 진단키트와 헬스케어 서비스, 헬스케어 관련 앱을 만드는 정보기술(IT)업체로 구성했다. 김 대표는 “의료시장 전체에서 의료서비스를 80이라 치면 나머지 20 중 15가 약”이라며 “이 때문에 포트폴리오의 상당 부분을 신약 개발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나머지 5가 의료기기와 진단기기가 될 텐데 고령시대에 접어들면서 60대 인구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며 “약의 수요가 그만큼 늘기 때문에 의료 재정으로 버텨내기 위해선 약의 사용을 줄이는 방향을 강구해야 하고 가장 좋은 방법은 진단과 모니터링 기술이 발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단기술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 자명하므로 관련 기업에 신약 개발업체에 투자하는 것 못지않게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진단기술과 신약 개발을 함께 하는 곳에 투자하는 것을 가장 선호한다”고도 덧붙였다. 방사선이 나오는 의약품을 만드는 셀비온이 대표적이다. 셀비온에서 임상을 진행 중인 신약 후보물질은 치료제인 동시에 진단기기로서의 기능을 갖췄다. 암세포에 달라붙은 의약품에서 방사선이 나오기 때문에 의사는 이를 보고 진단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버블 우려는 아직 시기상조”

올 초만 해도 하루가 다르게 솟구치던 국내 증시 지수가 상승을 멈추고 대신 변동성이 확대됐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 중 눈에 띄게 뛰어오른 바이오 기업의 몸값을 두고 ‘거품(버블)’이라고 칭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김 대표는 “버블이란 건 시간이 지나고 돌아봤을 때 비로소 버블이란 걸 알게 된다”며 “버블을 예측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국내 바이오업계는 과실이 맺히는 단계여서 아직 과실을 따지도 않았는데 버블을 우려하는 건 시기상조”라고도 덧붙였다.

김 대표는 버블이 독이 되는 것만은 아니라고도 했다. 그는 “시장의 고평가가 시장의 질적 성장을 일으키는 선순환의 씨앗이 될 수 있다”며 “국내 바이오기업이 나스닥 기업보다 더 기업가치가 높아져야 자금은 물론 뛰어난 연구자, 엔지니어가 한국으로 오게 되고, 더 좋은 기업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 국내 바이오 투자 시장에 대해 김 대표는 낙관론을 유지했다. 그는 “지난해는 물론 올해에도 실물경기는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며 “기저효과를 타고 반등할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투자 고수 열전] 김명기 LSK인베스트먼트 대표 "다른 투자자 손 안 탄 초기 기업에 투자합니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3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