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다윗이 골리앗 이기는 일본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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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3, 매출 794위지만 시총 15위
매출·이익 규모 큰 기업보다
효율적으로 수익내는 기업 각광"
정영효 도쿄 특파원
매출·이익 규모 큰 기업보다
효율적으로 수익내는 기업 각광"
정영효 도쿄 특파원
의료정보 회사인 M3의 2019회계연도(2019년 4월~2020년 3월) 매출은 1309억7300만엔(약 1조3922억원)으로 일본 상장회사 3811곳 가운데 794위에 그쳤다. 혼다(14조9310억엔)와 이토추상사(10조9830억엔), 히타치(8조7673억엔), 파나소닉(7조4906억엔),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7조2991억엔) 등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의 매출에 크게 못 미쳤다.
그런데 지난 21일 기준 M3의 시가총액은 6조9808억엔으로 15위에 올랐다. 혼다(23위), 이토추상사(25위), 히타치(29위), 파나소닉(40위), 미쓰비시UFJ(18위) 등의 순위가 모두 M3보다 낮았다. 1년 새 M3의 주가가 3배로 뛰면서 몸집이 100배 큰 대기업을 누르는 일본판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M3의 약진이 투자자들의 판단 기준이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한다. PER(주가수익비율)의 시대가 저물고 ROE(자기자본이익률)의 시대가 열렸다고 평가하고 있다. 단순히 매출과 이익 규모가 큰 기업보다 효율적으로 수익을 내는 기업이 각광받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현대 금융이론의 대가로 불리는 애스워스 다모다란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는 “PER이나 PBR(주가순자산비율)에 의존하는 투자방식은 시대에 뒤처졌다”고 단언한다. PER과 PBR이 낮은 기업을 선별하는 투자법은 경제가 역사상 가장 안정적이어서 주가가 경기순환에 따라 움직이던 20세기 후반에 유효기한이 다했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980~2020년 40년을 10년씩 4구간으로 나눴다. 구간별로 시총 증가율(시총 3000억엔 이상 기준)이 가장 큰 100대 기업을 추려 매출 증가율, 이익률, ROE 등의 지표 변화와 시총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1980년대는 매출이 지배한 시대였다. 매출 증가와 시총의 상관관계가 0.76에 달했다. 1990년대 투자자들은 채산성을 중시했다. 매출 대비 순이익률과 시총의 상관관계가 0.3을 넘었다. 2000년대는 이익을 빠르게 늘리는 기업에 투자금이 몰렸다. 이익 증가율과 시총의 상관관계가 0.58이었다. 반면 2010년대 들어서는 ROE의 영향력이 비약적으로 커졌다. ROE와 시총의 상관관계가 0.4로 지난 40년간 가장 높았다.
순이익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ROE는 기업이 돈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벌었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투자자들이 효율성에 눈을 돌리는 건 시장이 성숙하면서 미국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 같은 세기의 성장주가 등장할 확률이 갈수록 줄어든다고 판단해서다. 이 때문에 ‘한 방’을 노리는 대신 투자금을 효율적으로 불려주는 기업에 자금을 몰아준다는 설명이다.
‘ROIC(투자자본이익률)-WACC(가중평균자본비용)=초과이윤’이라는 공식도 일본 주식시장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투자금으로 벌어들인 이익에서 이자와 배당 같은 자금조달 비용을 빼면 기업경영의 효율성을 보다 정교하게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기준은 일본 기업의 고질적인 비효율성을 잘 보여준다. 도쿄증시 1부 상장사의 평균 WACC는 7~8%다. 평균 ROIC는 4.6%에 그친다. 2019년까지 10년간 상장사 54%의 ROE는 8%를 밑돌았다.
반면 M3의 ROE는 16~30%, 초과이익은 10%를 꾸준히 넘었다. 이 회사의 최대 무기는 일본 전체 의사의 90%(29만 명)가 가입한 플랫폼이다.
강력한 진입 장벽 덕분에 M3의 영업이익은 2000년 창업 이후 20년 연속 늘었다. 소니와 키엔스, 모노타로 등 지난해 시총이 급증한 일본 기업들은 ROE가 높고 초과이윤을 꾸준히 낸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높은 ROE가 IT 회사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제조업과 유통업도 경쟁사가 흉내낼 수 없는 생산설비나 판매망을 확보함으로써 난공불락의 진입 장벽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 재료기업 호야, 혈압계 전문업체 오므론, 눈약에 특화한 산텐제약 등이 이런 전략으로 높은 ROE와 초과이윤을 유지하는 제조업체들로 꼽힌다.
2019년 말 기준 한국 상장사의 ROE와 ROIC는 각각 4.57%, 4.1%였다. 효율성 면에서 합격점을 주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일본 주식시장의 변화를 참고해야 하는 이유다.
세 번째로 텐배거를 많이 배출한 업종은 금융업이었다. 비자와 마스터카드 등 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핀테크 금융회사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전통적인 은행들의 주가가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2010년대 텐배거들 역시 고효율성을 앞세워 높은 수준의 ROE(자기자본이익률)를 유지하는 기업들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국가별로는 캐나다가 280여 곳의 텐배거를 보유해 미국(250여 개사)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지난 10년간 쇼피파이와 같은 ICT 기업이 급성장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인도(3위)와 호주(4위)가 뒤를 이었다. 일본은 키엔스와 M3 등 152개의 텐배거를 배출해 5위에 올랐다. 중국은 100여 곳으로 6위에 그쳤다. 한국의 텐배거는 70여 곳으로 10위였다. 말레이시아(8위)와 터키(9위)가 한국보다 순위가 높았다.
hugh@hankyung.com
그런데 지난 21일 기준 M3의 시가총액은 6조9808억엔으로 15위에 올랐다. 혼다(23위), 이토추상사(25위), 히타치(29위), 파나소닉(40위), 미쓰비시UFJ(18위) 등의 순위가 모두 M3보다 낮았다. 1년 새 M3의 주가가 3배로 뛰면서 몸집이 100배 큰 대기업을 누르는 일본판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M3의 약진이 투자자들의 판단 기준이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한다. PER(주가수익비율)의 시대가 저물고 ROE(자기자본이익률)의 시대가 열렸다고 평가하고 있다. 단순히 매출과 이익 규모가 큰 기업보다 효율적으로 수익을 내는 기업이 각광받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현대 금융이론의 대가로 불리는 애스워스 다모다란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는 “PER이나 PBR(주가순자산비율)에 의존하는 투자방식은 시대에 뒤처졌다”고 단언한다. PER과 PBR이 낮은 기업을 선별하는 투자법은 경제가 역사상 가장 안정적이어서 주가가 경기순환에 따라 움직이던 20세기 후반에 유효기한이 다했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980~2020년 40년을 10년씩 4구간으로 나눴다. 구간별로 시총 증가율(시총 3000억엔 이상 기준)이 가장 큰 100대 기업을 추려 매출 증가율, 이익률, ROE 등의 지표 변화와 시총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1980년대는 매출이 지배한 시대였다. 매출 증가와 시총의 상관관계가 0.76에 달했다. 1990년대 투자자들은 채산성을 중시했다. 매출 대비 순이익률과 시총의 상관관계가 0.3을 넘었다. 2000년대는 이익을 빠르게 늘리는 기업에 투자금이 몰렸다. 이익 증가율과 시총의 상관관계가 0.58이었다. 반면 2010년대 들어서는 ROE의 영향력이 비약적으로 커졌다. ROE와 시총의 상관관계가 0.4로 지난 40년간 가장 높았다.
순이익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ROE는 기업이 돈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벌었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투자자들이 효율성에 눈을 돌리는 건 시장이 성숙하면서 미국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 같은 세기의 성장주가 등장할 확률이 갈수록 줄어든다고 판단해서다. 이 때문에 ‘한 방’을 노리는 대신 투자금을 효율적으로 불려주는 기업에 자금을 몰아준다는 설명이다.
‘ROIC(투자자본이익률)-WACC(가중평균자본비용)=초과이윤’이라는 공식도 일본 주식시장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투자금으로 벌어들인 이익에서 이자와 배당 같은 자금조달 비용을 빼면 기업경영의 효율성을 보다 정교하게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기준은 일본 기업의 고질적인 비효율성을 잘 보여준다. 도쿄증시 1부 상장사의 평균 WACC는 7~8%다. 평균 ROIC는 4.6%에 그친다. 2019년까지 10년간 상장사 54%의 ROE는 8%를 밑돌았다.
반면 M3의 ROE는 16~30%, 초과이익은 10%를 꾸준히 넘었다. 이 회사의 최대 무기는 일본 전체 의사의 90%(29만 명)가 가입한 플랫폼이다.
강력한 진입 장벽 덕분에 M3의 영업이익은 2000년 창업 이후 20년 연속 늘었다. 소니와 키엔스, 모노타로 등 지난해 시총이 급증한 일본 기업들은 ROE가 높고 초과이윤을 꾸준히 낸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높은 ROE가 IT 회사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제조업과 유통업도 경쟁사가 흉내낼 수 없는 생산설비나 판매망을 확보함으로써 난공불락의 진입 장벽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 재료기업 호야, 혈압계 전문업체 오므론, 눈약에 특화한 산텐제약 등이 이런 전략으로 높은 ROE와 초과이윤을 유지하는 제조업체들로 꼽힌다.
2019년 말 기준 한국 상장사의 ROE와 ROIC는 각각 4.57%, 4.1%였다. 효율성 면에서 합격점을 주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일본 주식시장의 변화를 참고해야 하는 이유다.
주가 10배 뛴 '텐배거' 2216곳…한국은 70여곳
지난해 기준 세계 주식시장에서 10년간 주가가 10배 상승한 종목을 뜻하는 ‘텐배거(Ten-Bagger)’는 모두 2216개사였다. 중국 텐센트, 미국 엔비디아 등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이 가장 많았다. 미국 아마존과 영국 오카도그룹, 일본 모노타로 등 전자상거래 기업이 뒤를 이었다.세 번째로 텐배거를 많이 배출한 업종은 금융업이었다. 비자와 마스터카드 등 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핀테크 금융회사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전통적인 은행들의 주가가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2010년대 텐배거들 역시 고효율성을 앞세워 높은 수준의 ROE(자기자본이익률)를 유지하는 기업들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국가별로는 캐나다가 280여 곳의 텐배거를 보유해 미국(250여 개사)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지난 10년간 쇼피파이와 같은 ICT 기업이 급성장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인도(3위)와 호주(4위)가 뒤를 이었다. 일본은 키엔스와 M3 등 152개의 텐배거를 배출해 5위에 올랐다. 중국은 100여 곳으로 6위에 그쳤다. 한국의 텐배거는 70여 곳으로 10위였다. 말레이시아(8위)와 터키(9위)가 한국보다 순위가 높았다.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