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AI發 적자생존 시작됐다
인공지능(AI)의 진화가 눈부시다. 5세대(5G) 통신, 클라우드, 빅데이터의 날개를 달고 산업과 서비스를 종횡으로 가로지른다. 10년 뒤면 냉장고만큼 흔해질 것이란 ‘홈봇(가정용 로봇)’만 해도 그렇다. 아이를 가르치고, 함께 놀아주며, 세계적 마스터 셰프의 레시피 그대로 프랑스 요리 한 상을 뚝딱 차려낸다. 셰프는 유망 종목 투자 리포트를 밤새 작성해 아침 식탁에 올려놓을 수도 있다. 이쯤 되면 체코의 극작가 카렐 차페크가 1920년 예언한 ‘암울한 로봇의 미래’와는 거리가 먼 일이다.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1’이 던진 메시지는 ‘앞당겨진 미래’다. 혁신상 2관왕에 오른 한국 스타트업 브이터치의 가상 패널은 위기의 시대와 기술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함축한다. 1.2m 거리에서 3차원(3D) 카메라로 사용자의 눈과 손을 인식해 접촉하지 않고도 작동된다. 카를로타 페레스가 설파한 ‘파괴를 넘어선 창조적 건설’의 힘이다.

격리된 삶 이어준 AI의 진화

또 다른 메시지는 광속(光速)으로 치닫는 생존게임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가 주도해 만든 오픈 AI ‘GPT-3’는 세계 AI 시장의 지배자가 누군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베타 버전을 사용한 전문가들의 반응은 한결같이 ‘놀랍다!’로 집약된다. “나는 행복해!”라는 소설의 첫 문장만 써주면 AI가 나머지를 채워나간다. 완성된 소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88%가 ‘인간이 쓴 소설’로 인식한다는 게 미국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 AI는 엑셀 자료와 재무제표, 영문 이메일을 알아서 작성해준다. 딥페이크와 가짜뉴스는 애교 수준이다.

명현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는 “인간의 뉴런 연결이 10의 14제곱 정도인데, GPT-3는 이미 10의 11제곱까지 쫓아왔다”고 말했다.

우리 기업 상당수가 ‘스마트 이노베이션’으로 압축되는 대전환에 합류했다는 건 다행이다. 올해 CES가 시상한 386개 혁신상 중 국산 기술 100여 개가 수상 목록에 올랐다. 혁신상의 30%가량을 휩쓴 것이다.

문제는 이런 성과가 산업 전반의 현실을 대변해주진 못한다는 점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AI에 대한 기업체 인식·실태조사’ 결과가 이를 말해준다. 조사 대상 1000개사 중 AI 솔루션을 도입한 기업은 3.6%에 그쳤다.

허상과 공포 모두 내려놔야

‘사회적 준비’도 여전히 걸음마 수준이다. 여성으로 설정된 챗봇 ‘이루다’는 서비스 한 달도 안 돼 중단 결정을 내렸다. 이용자들의 부적절한 언어를 필터링하지 못해 성희롱 논란의 중심에 선 탓이다. 편향되지 않은 기술로 진화시키면서도, 사생활 정보 노출 피해자를 구제하는 쪽으로 풀면 될 일을, 절대도덕의 문제로 어렵게 다루느라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진화가 더 더딘 쪽은 정부다. ‘이루다’가 시끄러워지자 규제부터 만지작거리는 분위기다. 한 AI 전문가는 “빅데이터조차 맘대로 쓰지 못하도록 막는 게 한국의 연구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AI는 ‘인간처럼’ 진화할 뿐이다. 베토벤 미완성 교향곡 10번을 완성해내며, 요절한 가수의 목소리를 완벽하게 재현한다. 그러나 베토벤의 체온으로, 가수의 눈물로 예술을 그리기엔 갈 길이 멀다. 과장된 기대와 두려움 모두 거둬야 하는 이유다. 로봇의 선구자로 꼽히는 로드니 브룩스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이렇게 일갈한다.

“산 위의 보름달을 보고 달이 산 위로 다가왔다고 말하는 게 요즘 AI를 보는 세태다. 달이 진짜 거기에 있는가.”

달은 38만㎞ 먼 우주에 있다. 포용과 기다림이 먼저다.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