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 국제 금융시장의 키워드는 미국 달러화 약세였다.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기축통화인 달러의 ‘무제한 양적완화’ 탓이다. 이렇게 달러가치가 흔들리면 피신처인 금값이 치솟는다는 게 이 바닥의 상식이다.

하지만 어쩐 일이지 최근에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달러가치가 최근 넉 달 새 7% 정도 떨어졌지만 같은 기간 금값은 오르기는커녕 20%가량 폭락했다. 인류 역사 초기부터 ‘화폐’로 대우받았고, 달러 등장 후에도 ‘양대 안전자산’의 지위를 누려온 금으로선 말 못 할 수모다.

흔들리는 금 대신 부상한 자산이 탄생 11년 된 가상화폐 ‘비트코인’이다. 비트코인 가격이 연이틀 장중 3000만원을 돌파했다. 하반기 들어 3배, 연중 저점인 3월에 비해선 6배로 수직상승했다.

‘가즈아’라는 유행어로 기억되는 2017년에 이은 두 번째 ‘투자 광풍’이지만, 이번 랠리는 3년 전과도 사뭇 다르다. 3년 전엔 ‘개미’가 주축으로 17세기 튤립 투기에 비견될 정도였다. 지금은 르네상스테크놀로지스, 그레이스케일 등 세계적 ‘큰손’들이 시세를 주도한다.

화폐의 필수기능인 결제에서도 장족의 발전이 목격된다. 세계 최대 전자결제회사 페이팔은 앱에서 곧바로 비트코인을 사고 팔고 보관하는 서비스를 두 달 전 출시했다. 페이팔 가맹점 2600만 곳 중 65%가 비트코인을 결제수단으로 받는다. 인도 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라구람 라잔 교수는 ‘많은 사람이 가치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비트코인은 금과 비슷하다’고 진단했다.

비트코인의 질주는 각국 중앙은행의 디지털화폐(CBDC) 개발 붐을 자극하는 등 파장이 전방위적이다. CBDC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것으로 가상화폐와 비슷하지만 중앙은행이 보증한다는 점이 큰 차이다. 중국의 행보가 특히 주목받는다. 올 4월 중국 내에서 시범사업을 시작했고, 이달 들어 비(非)위안화권인 홍콩 테스트에 돌입했다. ‘일대일로(一帶一路)’ 국가들을 통한 ‘위안화 블록’ 구축 신호로 해석된다. 이렇게 비트코인은 미·중 통화전쟁의 한복판으로 소환되고 있다.

가치가 불안정한 ‘언스테이블 코인’ 비트코인과 달리, 달러화와 연동시킨 ‘스테이블 코인’인 페이스북 ‘리브라’의 행보도 큰 변수다. 비트코인이 황금이 될지, 튤립이 될지는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오직 시간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비트코인을 ‘사기’나 ‘황금’으로 단언하는 이들이야말로 사기꾼이나 도굴꾼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이다.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