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보이 /사진=변성현 기자
릴보이 /사진=변성현 기자
누군가는 말한다. '쇼미더머니9'를 통해 릴보이라는 래퍼의 진가를 알게 됐다고. 그리고 또 다른 이들은 말한다. 릴보이가 드디어, 마침내 해냈다고. 분명한 사실은 그가 '영 보스(YOUNG BOSS)' 타이틀을 따냈다는 것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는 것. 릴보이가 보여준 힙합은 도발보다는 위로, 경쟁보다는 연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힙합, 따뜻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즐길 수 있는 장르였구나!" 깔끔하게 고정관념을 깨준 릴보이였다.

Mnet '쇼미더머니9'라는 긴 대장정을 끝내고 최종 우승 깃발을 꽂은 릴보이의 얼굴은 한층 밝아 보였다. '축하한다'는 말에 릴보이는 특유의 '히히히'라는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는 "일단 너무 좋다"면서 "마냥 기분이 좋은 것만이 아닌, 내 음악 활동에 다시금 활력을 불어넣은 것 같다. 음악적으로 큰 자극이 됐다"며 기뻐했다.

"제가 항상 친구들이랑만 작업을 하다 보니 음악을 들어주는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했어요. 타 다른 아티스트랑 만나면 잘 다가가지 못하는 성격이거든요. 그런데 '쇼미더머니9'는 강제로 인연을 만들어주잖아요. 같이 머리 맞대서 고민해 음악을 만드는 게 정말 재미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한 '쇼미더머니9'였다. 그러나 발을 들인 이상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전쟁'이자 '마라톤'이었단다. 우승은 쉽게 예측하지도 못했다고 했다. 릴보이는 "지원할 당시에는 영상을 유튜버 분들이 퍼가면서 하나의 엔터테인먼트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시작하니 전쟁이었다. 매 순간이 너무 힘들어서 더 기억에 남는 것 같다"며 "나온 김에 우승을 하면 당연히 너무 좋겠다고는 생각했지만 확신은 없었다. 시대가 바뀌고, 힙합 장르의 폭이 넓어진 상황에서 랩만 잘하는 포지션으로서 우승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경연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더욱 우승에 확신이 없었다고. 나날이 늘어가는 다른 참가자들의 실력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릴보이는 "머쉬베놈은 무섭다. 본인도 눈을 보여주면 떨렸다고는 하는데 늘 선글라스를 끼고 꼿꼿하게 서 있으니 긴장이 하나도 안 돼 보였다. '쟤를 어떻게 이길 수 있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또 원슈타인에 대해서는 "아우라가 있는 뮤지션인 것 같다. 자기 색이 너무 강해서 그게 막 뿜어져 나오는 게 보인다. 영상 매체가 아닌, 라이브로 봤을 때 더 와닿는 뮤지션이더라"고 했다. 미란이의 무대에도 놀랐다고. 릴보이는 "2차 때 미란이를 봤을 땐 긍정 에너지라고만 느꼈는데 갈수록 실력이 늘더라. 그러다 마지막엔 너무 잘했다"며 감탄했다.

이어 "그런 게 무서웠다. 나는 우승후보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우승후보라 생각해 주는 상황에서 실력이 눈에 띄게 느는 참가자들이 무섭게 다가온다. '이러다 진짜 큰일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정신 바짝 차리고 해야 한다는 걸 스스로도 많이 느끼고, 주변 프로듀서들도 계속 상기시켜줬다"고 전했다.
릴보이 /사진=하프타임레코즈 제공
릴보이 /사진=하프타임레코즈 제공
2015년 '쇼미더머니4' 출연 이후 5년 만에 재도전한 '쇼미더머니9'에서 당당히 '영 보스' 타이틀을 차지한 릴보이는 감성적이고 담백하게 표현한 곡부터 강렬하고 타이트하게 들어가는 랩까지 다채로운 모습을 선보였다. '내일이 오면', 'Bad News Cypher vol.2', 'ON AIR', 'CREDIT' 등 모든 무대가 희열을 넘어 놀라움을 안겼다. 때론 진한 감동이 흘러나와 먹먹함을 안겼고, 폭발적인 에너지가 시청자들을 열광케 할 때도 있었다. 릴보이의 색채에 맞게 표현된 경연곡들은 각종 음원차트에서도 상위권에 자리하고 있다.

"듣기 제일 좋았던 반응이요? 흠... 제 무대를 보고 울컥했다고 하는 분들이 있었어요. 전 제 이야기를 썼을 뿐인데 같이 공감해 주시는 분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런 게 제일 좋았어요."

감성을 건드리는 릴보이의 색채. 과거 일각에서는 그의 음악을 두고 "힙합이 아니라"며 조롱을 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릴보이는 지난 5년간 대인기피증, 우울증 등을 겪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릴보이의 음악이 힙합이 아니라고 말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는 오롯이 릴보이 본인이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낸 결과다.

릴보이는 "힙합도 좋아하지만 재즈나 블루스 등 칠(Chill)한, 차분하게 만든 노래도 많이 듣는다. 클래식도 좋아한다"면서 "성격 자체가 힙합의 경쟁 모드와는 맞지 않아서 어려웠다. 하지만 경쟁은 힙합의 한 부분일 뿐, 전부는 아니다. 힙합은 경쟁 외에 파티 음악도 있고, '원 러브'라고 서로 리스펙(존경)을 표하는 것도 있는 멋있는 문화다. 서로에 대한 존중과 평화도 힙합의 한 부분이다"고 생각을 밝혔다. 이어 "'쇼미더머니9'에서 어떤 식으로든 이런 걸 표현할 수 있어서 좋았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우승하고 나니 '나도 당당하다', '떳떳하다'라는 느낌이 강해요."(웃음)
릴보이 /사진=하프타임레코즈 제공
릴보이 /사진=하프타임레코즈 제공
2011년 긱스로 데뷔한 릴보이는 '오피셜리 미씽 유(Officially Missing You)'로 단숨에 팀을 대중에 알렸다. 릴보이는 당시를 "상당히 거만했지만 참 재밌게 음악을 하던 시절"이라 추억했다. 그때의 홍대 거리는 아주 넓은 하나의 세상 같았다고. 한 시간 되는 거리를 걸어 다니면서도 전혀 힘이 들지 않았고, 오히려 새로운 곳을 찾아가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고 했다. 이후 차차 음악에 대한 고민도 많이 겪었지만 결과적으로 그 시절의 긱스는 지금의 릴보이를 만들었다.

릴보이는 "긱스는 내 음악의 시작이었다. 인생이나 다름없는 그룹"이라며 "긱스로도 준비해놓은 곡들이 있다"고 귀띔했다. 앞서 멤버 루이는 릴보이가 '쇼미더머니9'에서 우승한 이후 SNS를 통해 감동적인 축하글을 남긴 바 있다. 릴보이는 "그 형은 인스타로는 멋있는 말을 많이 한다. 실제로 같이 있을 땐 '너 짱이다' 정도로만 말해준다"고 재치 있게 말했다. 그러나 이내 "정말 가족이라는 말밖엔 표현할 게 없는 것 같다. 나한테는 친형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릴보이는 '쇼미더머니9' 파이널 무대를 고마운 사람들에게 바쳤다. 올라가는 '크레딧'에 고마움을 전해야 할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적었다. 이에 대해 릴보이는 "프로그램 출연 전에는 한이 되게 많았는데 다 녹아내린 것 같다. 조금 더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됐다. 지금 당장 느끼는 건 감사함"이라고 전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경연곡 역시 감사함을 담은 '크레딧'이라고. 릴보이는 "우리가 지금껏 했던 걸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식으로 보여주면서 끝내고 싶었다"면서 "도움 주는 분들의 명단을 봤는데 정말 많더라. 하지만 그걸 알아주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영화를 보더라도 크레딧을 끝까지 남아서 보는 사람들은 없지 않느냐.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다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조엘 역의 짐 캐리가 유년 시절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인데, 몸집이 작아진 짐 캐리는 CG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주변의 사물들을 크게 제작해 작아 보이도록 한 것이다. 릴보이는 이를 구현해낸 수많은 이들의 노력을 언급하며 "그런 장면이 나중에 결국 회자되듯, 여러 사람들이 노력한 것들이 꼭 기억에 남아 회자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가 빨리 사라져서 공연을 하고 싶은 마음도 크지만, 그보다 먼저 고생하신 분들 밥을 좀 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제 릴보이는 기세를 이어 내년에도 쭉 달려 나갈 예정이다. 그는 "자기 팀이랑 인연을 깊게 맺어서 팀 내에서 같이 컬래버레이션도 하고 싶고, 개인 앨범도 준비 중인 게 있다"고 알렸다. 이와 함께 "무대 서는 게 행복하다"며 콘서트를 열고 싶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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