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처럼…'5년 단위 脫탄소 계획' 만들어야"
“‘2050 탄소중립’은 30년 장기 비전이에요. 통으로 가기는 힘듭니다. 5년 단위 계획도 마련해야죠.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수립했던 것처럼요.”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탄소중립 로드맵을 짤 때 과거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참고하면 좋겠다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말씀드렸다”고 밝혔다. 30년짜리 계획이 있어야 하지만 변화하는 상황에 맞게 단기 계획을 짜는 것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일곱 번 마련해 지금과 같은 경제 초석을 이끌어 왔듯이 이제는 탈(脫)화석연료 기반의 5개년 경제계획을 여섯 번 마련해 새로운 경제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장관은 “탄소중립을 촉진하기 위해 기후변화대응기금이나 그린뉴딜펀드 등에서 구조 전환에 나서는 기업을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며 “녹색금융공사나 녹색은행 등을 만들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취임 3년차에 들어선 조 장관을 박준동 한국경제신문 경제부장이 지난 18일 서울 반포동 한강홍수통제소에서 만났다. 조 장관은 세종시, 청와대, 국회를 오가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이곳에서 업무를 볼 때가 꽤 있다고 했다.

▷탄소중립을 위한 구체적 계획은 언제 나오나.

“내년부터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한 시나리오 마련 작업에 착수한다. 에너지·산업·수송 등 부문별로 얼마나 탄소를 감축할 수 있는지 분석할 것이다. 내년 6월까지 구조 전환 강도에 따라 강·중·약으로 나눠 시나리오를 마련할 계획이다. 내부적으로 검토한 바에 따르면 전환이 제일 빠른 강 시나리오로 가는 게 국내총생산(GDP)이나 일자리에 미치는 부작용이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부문별 감축 로드맵을 만들고 수십 개의 개별 법을 비롯해 전력수급기본계획 등 법정 계획을 연동하는 작업에 1~2년이 소요될 것으로 본다.”

▷국민의 비용 부담이 불가피하지 않나.

“산업계, 전문가, 모든 이해당사자가 참여해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경로를 찾을 것이다. 2050 탄소중립에는 산업이 핵심이다. 산업에 모든 게 달려 있다고 보면 된다. 비용이 발생하면 산업계가 대부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톱다운 방식은 안 된다. 유럽연합(EU)의 그린딜을 보면 산업계가 먼저 제안한다. 우리도 산업계가 동참하면서 먼저 탄소중립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놓고 학계 등 전문가와 정부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탄소중립은 30년 사업이다. 경제개발계획이 1962년 시작해 약 30년에 걸쳐 현재의 경제 초석을 만들지 않았나. 앞으로 30년간 우리 후세대가 살아갈 수 있는 저탄소 경제성공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30년간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5년 단위 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에게도 두어 번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와 페널티는.

“페널티보다는 저탄소 구조 전환에 따른 인센티브가 더욱 중요하다. 기후변화대응기금이 그린뉴딜펀드 등에서 저탄소 산업으로 구조 전환하는 기업을 지원할 계획이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를 활성화하려면 관련 기업이나 금융회사에 충분히 정보를 제공해줄 필요가 있다. 환경부는 내년 6월까지 녹색산업 분류 체계(Taxonomy)를 마련하려고 한다. 녹색금융을 활성화하기 위해 정부가 녹색금융공사나 녹색은행을 만들 가능성도 있다. 페널티는 아마 조세 제도가 될 것이다. 현재 시행 중인 탄소배출권거래제를 강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탄소세 도입에 대한 정부 입장은 아직 정하지 않았다.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이미 시행하고 있는데 탄소세를 굳이 또 도입해야 하느냐’는 반론도 있는 게 사실이다.”

▷2030년까지 탄소중립 목표치는 어떻게 되나. 온실가스는 2030년 배출량을 2017년 배출량 대비 24.4% 줄이겠다고 했다.

“가능하면 이번 정부 안에 상향 조정된 목표치를 제시하려고 한다. 현재 목표대로 2050 탄소중립을 추진하면 초기엔 탄소 배출량을 점진적으로 줄이다가 나중에 급격히 감축 목표가 늘어나 힘들어진다. 낮출 수 있는 한 최대한 낮춰야 한다. 현재 여건으로는 솔직히 말하면 감축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정부의 의지를 담을 필요가 있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가기후환경회의의 정책제안에 대한 의견은 무엇인가.

“경유세를 휘발유세만큼 올리자고 했고, 2035~2040년께 가솔린차 등을 퇴출시키자고 제안했다. 이 제안에 대해 정부의 공식적인 답을 내는 건 유보해둔 상태다. 내년 탄소중립 로드맵을 작성할 때 전기요금이나 경유세 인상 여부 등이 자연스럽게 논의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정부 부처가 의견을 내기에는 시기적으로 여의치 않다.”

▷환경회의는 원전 정책 수정 필요성도 언급했다.

“정부의 기본 방침은 기존 원전을 유지하되 수명을 다할 때까지만 생산된 전력을 쓰고, 신규 원전은 안 짓는다는 것이다. 2050년에도 국내 발전량의 15%는 원전이 담당한다. 전 세계적 추세에 따라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늘릴 수밖에 없다. 원전과 같은 전통적 에너지원은 중앙집중적으로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기 때문에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힘들다는 문제가 있다. 다만 기존 산업의 도태에 따른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런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기술경쟁력과 같은 원전 관련 순기능을 기후변화 시대에 어떻게 접목할 것이냐를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친환경차 보조금을 줄이는 것은 탄소중립 추진과 상충하지 않나.

“친환경차 구매 보조금을 주거나 전기차 충전 때 할인특례 등을 제공하는 것은 시장 원리를 따라가야 한다. 보조금은 시장을 대신하는 게 아니라 시장이 일정 영역을 형성할 때까지만 돕는 것이다. 다만 현재로서는 시장에만 맡겨놓으면 친환경차 보급이 쉽지 않아 시장을 형성할 때까지는 정부가 역할을 해야 할 것 같다. 모두가 전기차를 탄다면 전기차에 따로 혜택을 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연간 친환경차 국내 판매 대수가 30만 대 정도 되면 친환경차 시장이 스스로 굴러갈 수 있다고 본다.” (연간 한국의 승용차 신규 판매는 150만 대 안팎이다.)

▷내부 조직 개편도 계획하고 있나.

“물 관리 일원화, 그린뉴딜, 탄소 중립 등으로 당장 실(室) 하나 정도는 더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신규 업무 수요를 감안해 내년도 전체 환경부 내부 조직개편에 대한 그림을 그릴 것이다. 이달 초 탄소중립 실현 추진전략을 발표하면서 대통령 직속 민관 합동 ‘탄소중립위원회’를 만들기로 했다. 이 위원회가 어떻게 만들어질지, 환경부가 어떤 일을 맡게 될지도 지켜봐야 한다.”

■ 조명래 장관은 누구인가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도시계획과 환경을 통합해 연구한 학자 출신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국토부와 환경부를 통합해 ‘국토환경부’를 만들자고 한 것은 전문가로서의 제언이었다. 환경 분야에선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원장과 한국환경회의 공동대표를 맡은 경험이 있다. 4대강 사업 반대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변창흠 전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이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알려진 한국공간환경학회의 멤버이기도 하다. 이 학회에서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과 함께 활동했다. 2018년 11월 환경부 장관에 취임한 이후 만 2년 넘게 환경부를 이끌고 있다. 지난 10월엔 문재인 대통령이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는 데 조 장관이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약력
△1955년 경북 안동 출생
△안동고, 단국대 지역개발학과 졸업
△서울대 도시계획학 석사, 영국 서섹스대 대학원 도시 및 지역학 석·박사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
△한국환경회의 공동대표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원장


정리=구은서/사진=허문찬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