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삿돈으로 산 칼로 회사를 겨누는 꼴이네요.”

지난 9일 KB금융지주 우리사주조합이 수백억원 규모의 우리사주를 사들였다며 ‘표 대결’을 예고하는 자료를 내자 한 금융권 관계자가 한 말이다. 이날 KB금융 우리사주조합은 지난달 16일부터 이달 6일까지 161만6118주(676억원 규모)의 우리사주를 장중 매입했다고 발표했다. 지분율은 기존 1.34%에서 1.73%로 뛰었다. 국민연금(9.97%)과 JP모간체이스뱅크 등에 이어 실질적 4대 주주가 됐다는 설명도 곁들었다.

이날 발표는 임시 주주총회를 앞두고 발언권을 강화하기 위한 조합 측의 ‘선전포고’로 받아들여졌다. 그간 추진해 온 노조 추천 이사제 및 사외이사 후보 추천 안건을 밀어붙이기 위한 차원이라는 해석이다. KB금융 우리사주조합은 지난 9월 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전문가 두 명을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하는 내용의 주주제안을 했으나 통과는 불투명하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기구인 ISS는 “KB금융 측이 선임한 사외이사가 ESG 전문가가 아니라고 볼 수 없다”며 노조에 반대 의견을 냈다.

이런 상황에서 ‘표 대결’을 시사한 것은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는 시도라는 분석이다. 지분율이 높지는 않지만 높아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사측을 심리적으로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합은 자료에서 “국민연금이나 JP모간 등 주요 주주가 재무적 투자자임을 감안하면 우리사주조합이 직접적인 의견 개진이 가능한 실질적 최대주주”라며 “이사회의 다양성과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우리사주조합에 사외이사 추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조합이 새로 취득한 지분을 회사에서 지원받은 자금으로 사들였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KB금융 노사는 앞서 2분기 우리사주 취득 자금 대출 제도를 운용하는 데 합의했다. 조합원 1인당 1000만원씩 한국증권금융에서 대출을 받아 우리사주를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대출 이자는 회사 측(국민은행)이 댄다. 대출 금리(연 2.15%)를 고려하면 연 12억~13억원에 달하는 이자를 회사가 대신 지원해주는 셈이다. 일종의 복지 차원에서 시행하는 제도다. ‘회삿돈으로 산 칼로 회사를 겨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다른 기업들이 KB금융의 사례를 보고 우리사주 취득자금 대출 제도 도입을 꺼리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표 대결을 통해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번 사례는 다르다”며 “회사 측에서 조합원 복지를 위해 시행하는 제도를 역으로 이용한다면 노조 입지만 좁히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