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논설실] 일본 언론 통해 日 정부 '속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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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 언론에서 한국과 관련해 일본 정권 심층부의 의사를 유추해볼 수 있는 뉴스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최근 대법원의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과 관련, '일본 기업이 징용 배상에 응하면 추후 한국 정부가 이를 메꿔주는 방안을 일본 정부에 타진했지만, 일본이 이를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산케이신문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와의 전화 회담을 한국이 가장 먼저 제의했지만, 일본 정부가 의도적으로 한국의 순서를 뒤로 미뤘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 발로 나온 이들 뉴스들은 오보 여부를 떠나 그 내용상 일본 총리실(수상관저)외엔 알 수 없는 것들이어서 일본 최고권부가 언론에 흘린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핵심 고급 정보들을 손에 쥔 일본 고위 관료들은 오랫동안 자신의 입장에 맞게 정보를 풀면서 언론을 활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전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지난해 7월 불화수소 등 3개 반도체 생산 핵심소재의 대(對)한국 수출규제 방침을 발표하기에 앞서 같은 입장을 산케이신문에 하루 먼저 흘렸던 것이 대표적이다. 아베 정권 당시에는 보수 언론인 요미우리신문과 산케이신문에 집중적으로 정보가 새나갔지만, 스가 정권이 들어선 이후엔 일본 내 대표적인 진보 매체인 아사히신문까지 일본 정부의 속내를 드러내는 통로로 활용된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특히 스가 정권이 언론에 흘린 기사를 살펴보면 표현이 매우 애매하다. 이 또한 정부 보도자료를 통째로 넘겨준 것 같았던 아베 정권과는 차이가 나는 점이다.
아사히신문이 전한 '한국 정부가 일본 기업의 징용배상금을 메꿔 주는 방안을 타진했다'는 기사에는 '보전(補塡)'이라는 용어 대신 구멍 등을 메운다는 뜻의 '아나우메(穴埋め)'라는 단어가 쓰였다. 외교와 법, 정치 분야에서 통용되는 구체적인 뜻을 지닌 단어가 쓰였다고 보기 어렵다. 정보를 흘린 관계자가 사실관계를 호도하거나 책임을 불명확하려고 의도적으로 구어적 표현을 쓴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 내 대표적인 혐한 언론이라 할 수 있는 산케이신문이 보도한 문재인 대통령의 전화 순번을 뒤로 돌렸다는 기사도 스가 총리가 취임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등 7명과 전화 회담을 한 뒤 8번째로 문 대통령과 통화했다는 공개된 팩트에 한국이 가장 먼저 통화할 것을 제안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덧붙인 수준에 불과하다.
국가 간 기밀 내지는 비밀이 지켜질 것을 전제로 한 물밑접촉의 내용까지 기사를 통해 공개된 만큼, 보도 내용의 사실 여부를 떠나 앞으로 징용 피해자 배상 관련 일본 기업 자산압류 같은 한·일간 첨예하게 대립하는 분야에서 해법을 찾기는 더욱 어려워 보인다. 어떤 일을 진행할 때 사전협의와 교섭을 중시하는 '네마와시(根回し)'문화가 뿌리내린 일본에서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힌 역설적 결과가 나온 셈이다.
다만 눈여겨볼 것은 일본 정부의 잇따른 정보 흘리기 속에서도 일관된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공기(분위기)를 읽는다'는 말이 널리 통용될 정도로 고맥락사회인 일본에선 직설적으로 속마음을 표현하기보다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뜻을 드러내는 것이 생활화돼있다. "그 집 따님이 피아노를 참 잘 치내요"라는 말은 "시끄러우니 조용히 해라"라는 뜻이고, 식당에서 "마실 차를 더 드릴까요"라고 종업원이 묻는다면 "다 먹었으면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말을 돌려 표현하는 식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일본 정부가 의도적으로 한국 정부를 하대(下待)하고 있으며, 이 같은 사실이 공개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는 점이 부각된다. 또 한국 정부가 선택(또는 일본에 제시)한 대일 접근법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점도 지속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한편으로 일본 정부의 이 같은 태도는 동전의 양면처럼 한국 정부에 '일본에 관심을 가지고 응해달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측면이 있기도 하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는 동시에 한국과의 교류 확대를 위한 메시지도 동시다발적으로 전하고 있다. 지난달부터 '한·일 기업인 특별입국 절차'에 따라 코로나19 사태에도 양국 간 기업인 교류를 가로막는 문턱이 많이 낮아졌지만, 기업인들이 오갈 한·일간 핵심노선이 막혀있는 데 대해 일본은 지속적으로 문턱을 낮춰 달라고 요구하는게 대표적이다. 한국과 중국 간엔 13개 노선이 운항을 재개했지만, 한·일간에는 인천~나리타, 인천~오사카 등 2개 노선만 운영하고 있어 이를 확대해 달라는 것이다. 특히 기업인들의 방일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김포~하네다 노선의 재개를 일본 정부가 강하게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리적으로 한국과 가장 가까운 나라인 일본은 정치·경제·문화 등 여러 측면에서 불가분의 관계다. 일본의 '속내'를 정확히 읽어야 한국이 취할 적절한 대응도 찾기 쉬워진다. 일본 정부가 일본 언론을 통해 드러내는 그들의 속마음을 그저 불쾌하게만 받아들여서는 우리가 얻는게 없을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용일(用日)과 승일(勝日)의 첫걸음이 아닐까 싶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
아사히신문은 최근 대법원의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과 관련, '일본 기업이 징용 배상에 응하면 추후 한국 정부가 이를 메꿔주는 방안을 일본 정부에 타진했지만, 일본이 이를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산케이신문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와의 전화 회담을 한국이 가장 먼저 제의했지만, 일본 정부가 의도적으로 한국의 순서를 뒤로 미뤘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 발로 나온 이들 뉴스들은 오보 여부를 떠나 그 내용상 일본 총리실(수상관저)외엔 알 수 없는 것들이어서 일본 최고권부가 언론에 흘린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핵심 고급 정보들을 손에 쥔 일본 고위 관료들은 오랫동안 자신의 입장에 맞게 정보를 풀면서 언론을 활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전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지난해 7월 불화수소 등 3개 반도체 생산 핵심소재의 대(對)한국 수출규제 방침을 발표하기에 앞서 같은 입장을 산케이신문에 하루 먼저 흘렸던 것이 대표적이다. 아베 정권 당시에는 보수 언론인 요미우리신문과 산케이신문에 집중적으로 정보가 새나갔지만, 스가 정권이 들어선 이후엔 일본 내 대표적인 진보 매체인 아사히신문까지 일본 정부의 속내를 드러내는 통로로 활용된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특히 스가 정권이 언론에 흘린 기사를 살펴보면 표현이 매우 애매하다. 이 또한 정부 보도자료를 통째로 넘겨준 것 같았던 아베 정권과는 차이가 나는 점이다.
아사히신문이 전한 '한국 정부가 일본 기업의 징용배상금을 메꿔 주는 방안을 타진했다'는 기사에는 '보전(補塡)'이라는 용어 대신 구멍 등을 메운다는 뜻의 '아나우메(穴埋め)'라는 단어가 쓰였다. 외교와 법, 정치 분야에서 통용되는 구체적인 뜻을 지닌 단어가 쓰였다고 보기 어렵다. 정보를 흘린 관계자가 사실관계를 호도하거나 책임을 불명확하려고 의도적으로 구어적 표현을 쓴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 내 대표적인 혐한 언론이라 할 수 있는 산케이신문이 보도한 문재인 대통령의 전화 순번을 뒤로 돌렸다는 기사도 스가 총리가 취임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등 7명과 전화 회담을 한 뒤 8번째로 문 대통령과 통화했다는 공개된 팩트에 한국이 가장 먼저 통화할 것을 제안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덧붙인 수준에 불과하다.
국가 간 기밀 내지는 비밀이 지켜질 것을 전제로 한 물밑접촉의 내용까지 기사를 통해 공개된 만큼, 보도 내용의 사실 여부를 떠나 앞으로 징용 피해자 배상 관련 일본 기업 자산압류 같은 한·일간 첨예하게 대립하는 분야에서 해법을 찾기는 더욱 어려워 보인다. 어떤 일을 진행할 때 사전협의와 교섭을 중시하는 '네마와시(根回し)'문화가 뿌리내린 일본에서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힌 역설적 결과가 나온 셈이다.
다만 눈여겨볼 것은 일본 정부의 잇따른 정보 흘리기 속에서도 일관된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공기(분위기)를 읽는다'는 말이 널리 통용될 정도로 고맥락사회인 일본에선 직설적으로 속마음을 표현하기보다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뜻을 드러내는 것이 생활화돼있다. "그 집 따님이 피아노를 참 잘 치내요"라는 말은 "시끄러우니 조용히 해라"라는 뜻이고, 식당에서 "마실 차를 더 드릴까요"라고 종업원이 묻는다면 "다 먹었으면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말을 돌려 표현하는 식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일본 정부가 의도적으로 한국 정부를 하대(下待)하고 있으며, 이 같은 사실이 공개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는 점이 부각된다. 또 한국 정부가 선택(또는 일본에 제시)한 대일 접근법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점도 지속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한편으로 일본 정부의 이 같은 태도는 동전의 양면처럼 한국 정부에 '일본에 관심을 가지고 응해달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측면이 있기도 하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는 동시에 한국과의 교류 확대를 위한 메시지도 동시다발적으로 전하고 있다. 지난달부터 '한·일 기업인 특별입국 절차'에 따라 코로나19 사태에도 양국 간 기업인 교류를 가로막는 문턱이 많이 낮아졌지만, 기업인들이 오갈 한·일간 핵심노선이 막혀있는 데 대해 일본은 지속적으로 문턱을 낮춰 달라고 요구하는게 대표적이다. 한국과 중국 간엔 13개 노선이 운항을 재개했지만, 한·일간에는 인천~나리타, 인천~오사카 등 2개 노선만 운영하고 있어 이를 확대해 달라는 것이다. 특히 기업인들의 방일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김포~하네다 노선의 재개를 일본 정부가 강하게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리적으로 한국과 가장 가까운 나라인 일본은 정치·경제·문화 등 여러 측면에서 불가분의 관계다. 일본의 '속내'를 정확히 읽어야 한국이 취할 적절한 대응도 찾기 쉬워진다. 일본 정부가 일본 언론을 통해 드러내는 그들의 속마음을 그저 불쾌하게만 받아들여서는 우리가 얻는게 없을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용일(用日)과 승일(勝日)의 첫걸음이 아닐까 싶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