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순의 과학의 창] 노벨상 시즌에 떠올린 알파입자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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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순의 과학의 창] 노벨상 시즌에 떠올린 알파입자 실험](https://img.hankyung.com/photo/202010/07.21675932.1.jpg)
그런데 이런 문답을 접할 때마다 질문 자체가 섣부른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물리학을 공부하려는 학생들에게 매년 강의시간에 어니스트 러더퍼드의 알파 입자 산란 실험 이야기를 해준다. 실험이 갖는 과학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노벨상이라는 직접적인 보상이 없었다는 사실, 실험 방법의 개념적 단순함에 비해 극도로 지루한 실제 실험 과정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훌륭한 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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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기'로 밝힌 원자 구조
![[최형순의 과학의 창] 노벨상 시즌에 떠올린 알파입자 실험](https://img.hankyung.com/photo/202010/AA.24081145.1.jpg)
알파 입자는 양전하를 띠는 입자로, 형광물질과 충돌하면 형광물질이 깜박이며 빛을 낸다. 형광물질을 금박지 둘레에 적절하게 배치하고 얼마나 자주 깜박이는지를 세어서 알파 입자의 양을 측정할 수 있었다. 알파 입자 1개가 형광물질과 충돌할 때 나는 빛은 매우 희미하다 보니 암실에 들어가 눈이 암적응할 때까지 한참 기다린 후에 알파 입자를 눈으로 세야 했다. 알파 입자가 한꺼번에 너무 많이 들어오면 정확히 세기가 어렵기 때문에 분당 50~100개 이상을 측정하기 어려웠고, 그마저도 현미경을 통해 들여다봐야 했기 때문에 금세 눈이 피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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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실험으로 가장 유명해진 사람은 러더퍼드지만 실제 실험을 수행한 것은 러더퍼드와 일하던 한스 가이거라는 물리학자와 어니스트 마르스덴이라는 학부생이다. 가이거와 마르스덴은 1만 분 이상의 시간 동안 1분 간격으로 교대 실험을 했는데, 인간의 인내심으로 해낼 수 있는 실험이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여담이지만 가이거의 가장 유명한 업적은 추후에 가이거-뮐러 카운터라고 하는 방사선 검출기를 발명한 것인데, 가이거가 왜 이런 검출기를 발명하고 싶어 했을지를 상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노벨상 욕망보다 호기심 일깨워야
흥미로운 것은 이 엄청나게 지겹지만 엄청나게 위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러더퍼드, 가이거, 마르스덴 그 누구도 그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러더퍼드는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기는 했으나 이 실험을 하기 전의 일이다). 이런 지긋지긋한 실험의 결과물이 세상에 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결국은 가이거와 마르스덴의 끈기 덕분인데, 이쯤에서 그 끈기를 지탱시켜준 동력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두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가본 것은 아니지만, 결국 원자의 구조에 대한 원천적인 호기심 아니었을까? 노벨상을 받겠다는 공명심이 자연의 비밀을 밝혀보겠다는 호기심을 앞섰다면 이 지긋지긋함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ADVERTISEMENT
우리 과학계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 정도로 성숙하려면, 노벨상에 대한 욕망을 부추기기 전에 이 자연에는 어떤 신기한 비밀이 숨어 있는가에 대한 호기심을 일깨워 주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그렇게 호기심 그득한 과학자들이 분야별로 한가득 있을 때쯤에서야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는 언제 나올까라는 질문이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최형순 < KAIST 물리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