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빡세졌는데 그마저도 불공정이라니…청년들 분노할 수밖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입시 특혜 의혹,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 특혜 의혹.

지난해와 올해 정국을 뒤흔든 세 가지 '사태'는 모두 '불공정'에 대한 반발이었다. 입시·병역·취업 과정에서 “경쟁이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 청년들은 분노했다. 여기에 '조국 사태'나 '추미애 사태'에서 드러난 특권층 자녀의 특혜 의혹에 '빽' 없는 청년들은 더 좌절감을 느겼다.

젊은 세대가 '공정'이란 화두에 예민한 이유는 무엇일까. 인구학의 국내 최고 권위자인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사진)는 불공정을 향한 청년들의 분노에는 인구구조 변화가 깔려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5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정돼 있는 양질의 일자리를 두고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다 보니 ‘조국 사태’나 ‘인국공 사태’처럼 불공정에 분노하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전엔 대학만 나오면 어느정도 성공이 보장되어 있었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고 진단했다.

다음은 조 교수와 일문일답

"경쟁 빡세졌는데 그마저도 불공정이라니…청년들 분노할 수밖에"
▷요즘 젊은 세대는 왜 불공정에 분노할까.

"인구 피라미드가 바뀌었다. 1994년 가수 김광석이 ‘서른 즈음에’를 불렀다. 그 때 서른 살이 우리나라 중위연령이었다. 지금 중위 연령은 45세 정도다. 15년이 늘었다. 여기에 이 시기(80년~90년대 초반) 대학을 나온 사람은 35%밖에 안 됐다. 지금 서른살인 90년생의 대학 진학률은 80%대에 달한다. 인구도 많고 경쟁이 심하다 보니 이들 대졸자가 느끼는 감정은 “경쟁이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게임의 룰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게임의 룰이라도 지켜줬으면 하는 사회적 기대가 있는데, (특권층이) 아무 거리낌없이 비리를 저지르는 걸 보면서 당연히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소득이나 지역 별로 젊은 세대의 교육 격차는 얼마나 벌어졌다고 보나.

"과거보다 심해졌다. 한국 사회가 특히 서울 등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더 심해졌다. 과거 90년대 초만해도 공부 잘하는 애들은 서울에 있는 사립대로 유학을 가야할지 고민하다가 부산대를 가는 친구도 많았다. 그런데 부산대를 간 친구들의 자식은 지금 다 '인서울'대를 보내려고 한다. 과거에 지역적으로 분산돼 있던 계층이동 기회가 지금 하나로 더 획일화된 꼴이다. '내가 서울을 안가면 루저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특히 공교육이 무너지면서 사교육 중요성이 커졌는데, 사교육은 서울 같은 대도시에 집중돼 있고, 교육 격차를 더 벌렸다.

▷지금도 좋은 대학을 나오면 계층 이동이 가능할까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계층 이동 수단은 교육이었는데, 지금은 교육이 갖고 있는 역할이 많이 줄어들었다. 한국 사회에서 계층 이동 해줄 수 있는 수단은 비트코인, 부동산 같은 자산이다. 서울 집값이 2~3년만에 몇억씩 오르면서 단순히 월급을 모아서 집을 사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청년들은 대기업이 좋은 줄 알고 대기업을 갔는데, 월급 300만원 받으면서 ‘내가 이거 받으려고 노력했나’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입시나 취업보다 물려 받는 자산이 계층 이동에 더 중요하단 얘기인가.

"그렇다. 한국에서 양극화를 더 만들어내는 것은 월소득보다는 자산의 영향이 더 크다. 그런 측면에서 더더욱 부모가 나한테 자산을 물려줄 수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의 차이가 점점 커지고 있다. 작년 통계를 보면, 서울 아파트를 가장 많이 구매한 사람이 30대다. 30대가 어떻게 구매가 가능하겠나. 당연히 부모가 증여해준 것이다. 그걸 부모가 집을 마련해 준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은, 소위 ‘같은 대학을 나오냐 마냐’와 큰 상관이 없다.

▷우리나라만의 얘기인가

"세계적인 흐름이다. 자본주의가 어느정도 성장한 나라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모습이다. 그동안 한국사회에는 “내가 좋은 대학 나오면 성공한다”라는 말이 통용됐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그것들이 밑 세대까지 영향을 주게 되면 그동안 생각했던 계층 사다리의 모습들은 굉장히 빨리 사라질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가 30대가 되는 7년 정도 후에는 달라질 것 같다.

▷좋은 대학이 필요 없고 부모 자산이 중요해지면, 기존에 자산이 많은 소위 '금수저'만 계층을 유지하는 것 아닌가.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과거에는 대학이 중요했다가 지금은 부모가 다 해주는 것이 중요한 사회로 가게된다면, 우리 사회가 획일성에 또 다른 획일성을 추가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이런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제도적 대책이 있을까

"가치의 획일화를 깨줘야 한다. 예컨대 좋은 지방대를 만든다든지, 18세에 꼭 수능을 쳐서 대학을 가는 게 아닌, 20~25세에 갈 수 있는 만큼 획일성을 줄여주는 제도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이런 부분들이 사회의 계층 사다리를 다양하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한다. 또 창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을 만들 수 있는 기회, 방법부터 알려줘야 한다. 모든 스타트업이 유니콘이 돼야하는 건 아니다. 왜 꼭 대기업이 돼야 하고, 몇천억을 벌어야 성공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창업 지원을 많이 해주는, 실패를 하면 더 지원을 해주는 그런 부분들을 마련해야 한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