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담댐 방류 피해 김락종씨 "고향 온 자녀 근심할까 더 걱정"

파래야 할 잎사귀는 회색빛으로 바짝 말라 버린 지 오래다.

바닥은 온통 진흙투성이다.

[르포] 수마가 휩쓴 포도밭…풍성해야할 추석, 시름만 가득
엉망이 된 포도밭을 바라보는 김락종(67)씨의 얼굴에서는 시름이 한가득 묻어났다.

포도 수확에 한창 바쁠 시기지만, 그는 수마가 휩쓸고간 밭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면서 쓸만한 포도송이 몇 개 건지는 데 만족해야 한다.

지난달 발생한 수해가 풍성해야 할 그의 추석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다.

충북 옥천군 동이면 학령2리 이장인 그는 5천600여㎡의 밭에 샤인머스켓과 거봉을 재배하고 있다.

고급 품종이라 농사를 잘 지으면 한해 7천만∼8천만원의 목돈을 손에 쥐었다.

그러나 올해는 1천200만원의 소득이 전부다.

그의 생계터전인 포도밭은 지난달 8일 오후 전북 진안군 용담댐에 가둬진 물이 콸콸 쏟아져 내려오면서 삽시간에 물바다로 변했다.

[르포] 수마가 휩쓴 포도밭…풍성해야할 추석, 시름만 가득
이날 용담댐 과다 방류로 인해 옥천에서는 농겨지 46.4㏊와 주택 11채가 물에 잠겼다.

7년째 포도 농사를 짓는 김씨도 이번처럼 어처구니 없는 수해는 처음이다.

"새벽 1시가 되니까 물이 1m 높이로 차오르더라구. 막을 방법이 있나.

속수무책으로 보고만 있었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어"
바닥에 떨어져 썩어가는 포도를 쳐다보며 허탈해하는 김씨의 입가에서는 긴 한숨이 떠나지를 않았다.

수확기 포도밭에 물이 차면 포도알이 갈라지고 썩는다.

성한 것을 골라 수확해도 상품성이 없어 제값을 받지 못한다.

해마다 포도를 직접 수확하던 김씨는 하는 수 없이 전문 상인에게 '밭떼기'로 포도밭을 넘겼다.

이렇게 받은 돈은 고작 1천200만원이다.

제법 잘 여물은 포도 일부는 취약계층 아동을 돕는 드림스타트에 기부했다.

이렇다 보니 올해 포도 출하를 위해 확보해둔 포장박스가 쓰지도 못한 채 작업장 한쪽에 수북이 쌓여 있다.

[르포] 수마가 휩쓴 포도밭…풍성해야할 추석, 시름만 가득
김씨는 "추석 때 자녀들이 손자들 데리고 놀러 올 텐데 망가진 포도밭을 보면 오히려 근심을 안고 갈 것 같아 마음 무겁다"고 말했다.

그의 걱정은 비단 올해 농사를 망친 데 그치지 않는다.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워온 포도나무가 내년에는 제대로 열매를 맺을지, 혹여나 말라 죽지는 않을지도 한걱정이다.

김씨는 "나무를 새로 심어 소출을 올리려면 3년은 걸린다"며 "자칫 나무가 말라 죽으면 내년, 후년 농사도 망칠 판"이라고 말했다.

그는 "용담댐 방류로 인한 수해는 인재"라며 "면사무소가 수자원공사를 상대로 한 소송을 지원한다는데 지금 기대할 거는 그거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키웠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