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집값 안정을 위해 강남권 공공 유휴부지에 아파트 2만 가구를 짓기로 해 주목된다. 대치동 SETEC 및 동부도로사업소 부지, 삼성동 서울의료원 강남분원 및 잠실 마이스 인근, 개포동 SH 사옥 및 구룡마을을 주거지로 개발하고 용적률을 높이는 방식이다. 구도심인 을지로 세운지구, 동대문 공구상가 등지에서도 개발 밀도를 높여 주택공급을 늘리기로 했다.

최근 주택가격 이상 급등 원인이 공급 부족이라는 점에서 서울시의 구상은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전국 주택보급률이 ‘100%를 웃돈다’는 식의 단순 총량 접근에 매몰돼 인기 지역의 공급 부족을 외면해 온 그간의 잘못된 인식에서 변화를 보인 점은 고무적이다.

다만 “선호도가 높은 아파트의 공급 부족이 서울 집값 상승의 원인”(주택산업연구원)이라는 지적을 수용한다면 보다 정공법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융통성 발휘가 필수적이다. 주택 확대에 동원되는 부지는 당초 관광·문화·상업시설을 일정 정도 넣으려던 땅이다. 서울시가 얼마 남지 않은 알짜 공공 유휴부지를 탈탈 털어 아파트를 짓겠다는 구상이 도시경쟁력이나 미관 측면에서 과연 최선인지 자문해 볼 시점이다.

기왕 공급 확대로 방향을 잡았다면 옴짝달싹 못하게 묶어둔 재건축·재개발 규제의 완화를 우선 고려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서울에는 준공한 지 40~50년이 지나 균열·누수·외벽손상은 물론이고 녹물·누전으로 안전마저 위협받는 노후단지가 수두룩하다. 재건축 연한인 30년을 넘긴 아파트가 30만 채에 육박하고, 그중 절반가량이 강남구와 양천구에 몰려 있다. 이들의 재건축을 유도하고 환수된 개발이익을 재원으로 서민 주거안정을 위해 임대아파트 건설을 대폭 늘리는 게 서로 ‘윈-윈’하는 정도(正道)일 것이다.

최근 집값 급등은 개발이익을 마이너스로 만들고 주택의 질을 떨어뜨려 집값 상승을 막는 정책이 지속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2017년 이후 런던 상하이 시드니 도쿄 파리 등 세계 주요 도시의 주택가격이 동반 하락하거나 보합세지만 유독 서울만 급등세다. 재건축 허용이 집값 급등으로 이어진다는 과도한 걱정도 벗어나야 한다. 복잡한 민간사업인 탓에 사업 진척속도는 빠르지 않으며, 단기적으로 가격이 오르더라도 공급확대에 따른 안정효과가 금방 압도할 것이란 게 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어쩌면 지금이 잘못된 주택정책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집값을 잡겠다고 내놓은 최강의 규제가 작동하기는커녕 세계 최고 수준의 상승률로 나타났다는 역설을 직시해야 한다. 부동산은 좌우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수요와 공급의 문제다. 더 좋은 집에서 살고 싶은 인간 본연의 욕망을 부정하는 정책이 시장에서 먹힐 수 없다는 점은 자명하다. 부동산을 ‘제압할 대상’으로 보는 아마추어식 땜질행정에서 과감히 탈피하지 않으면 더 큰 쓰나미가 덮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