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패닉바잉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급속히 확산하던 지난 4~5월만 해도 세계 곳곳에서 생필품 사재기로 곤욕을 치렀다. 선·후진국을 가리지 않고 슈퍼마켓 매대가 텅텅 비기 일쑤였다. 이른바 ‘패닉바잉(panic buying)’이 세계를 강타한 것이다.

한국은 배달·택배시스템과 수만 개의 편의점 덕분에 생필품 사재기가 없었지만 마스크 대란은 피할 수 없었다. 마스크를 사기위해 약국 앞에 장사진을 치던 게 불과 얼마 전이다.

사람들이 패닉바잉에 나서는 이유는 뭘까.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심리학 교수인 스티븐 테일러는 공포와 불확실성을 첫째 이유로 꼽는다. 그는 패닉바잉이 통상적인 재난 대비와는 확연히 다르다고 설명한다. 허리케인이나 홍수에 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포가 있을지 몰라도 불확실성은 크지 않다. 대피요령, 구호물품 목록 등도 거의 매뉴얼화돼 있어서다. 반면 코로나 같은 재앙에는 공포 이외에 불확실성까지 더해진다. 패닉바잉이 나타나는 이유다.

손실 회피(loss aversion)도 이유 중 하나다. 사람들은 할 수 없었던 일에 대해서는 결과가 나빠도 크게 낙담하지 않지만 할 수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다르다. 생필품을 살 기회가 있었는데 미루다 나중에 낭패를 보고 크게 후회하지 않기 위해 패닉바잉에 나선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군중심리다. 미디어를 통해 사재기 소식이 전해지고 주변인도 동참하면 자신도 모르게 패닉바잉에 나서는 게 인지상정이라는 얘기다. “커다란 배 위에서 모두가 구명정 쪽으로 달려간다면 당신 역시 일단 그들을 따르고 본다”는 게 테일러 교수의 분석이다.

생명과 재산에 대한 위협이 없어도 패닉바잉과 비슷한 현상은 흔히 볼 수 있다. ‘동학개미’의 주식 매수, TV홈쇼핑 마감시간을 앞둔 충동 구매, 기름값 인상 하루 전 주유 행렬 등이 그런 것들이다. 심지어 부동산조차 패닉바잉 대상이 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정부의 규제 일변도 부동산대책이 계속 집값을 자극하면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조급하게 집을 사려는 수요가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위기대처 능력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매우 낮을 때 패닉바잉이 일어나기 쉽다고 지적한다. 패닉바잉이 가격을 올려 정말 필요한 사람들을 소외시킨다는 문제도 거론한다. 모두가 지금 한국의 부동산시장을 ‘콕 집어’ 이야기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