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신용등급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매입할 특수목적기구(SPV)에 한국은행이 직접 대출하려던 정부 방안이 무산됐다.

14일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이주열 한은 총재는 최근 만나 제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발표한 저신용등급 회사채 및 CP 등 20조원어치 매입을 위한 SPV 설립 문제 등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양측은 한은이 산업은행에 대출한 다음 산은 산하에 SPV를 두는 내용을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한은은 다음주께 해당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비상경제회의에서 발표된 기간산업안정기금은 발표 직후 국회에서 관련법 개정안이 상정되고 통과되는 등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반면 저신용등급 회사채 매입 문제는 3주 동안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한은이 자금을 제공한다는 큰 방향은 잡혔지만 구체적인 방법을 놓고 정부와 한은의 생각이 달랐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 등은 한은이 SPV에 직접 대출하는 미국 방식을 도입하자고 한은 측에 요청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산은을 징검다리 삼아 재대출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산은은 한은에서 대출받는 대신 국채 및 통화안정증권 등을 담보로 제공할 예정이다. 정부는 해당 SPV에 일부 출자한다. 공기업 지분 등을 현물 출자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한은 내에서는 산은을 통한 재대출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컸다. 중앙은행이 직접 대출에 나섰다가 손실을 볼 경우 중앙은행의 정당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또 직접 대출을 다루기 위한 전문성 측면에서도 기업 여신 업무를 장기간 맡아온 산은이 더 적합하다는 논리도 내세웠다.

기재부와 금융위는 각국 중앙은행의 역할이 점점 더 강해지는 추세인데 산은에 돈만 지원하고 손실은 전혀 보지 않겠다고 빠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한은을 압박했으나 설득에 실패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