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간 100차례 이상 방문하며 중국 권부와 인맥 다져
"중국, 지난 50년간 눈부신 발전…시간이 흐르면서 투명해질 것"
"프랑스는 드골 이후 중국과 안정적 관계 유지…유럽, 미·중 관계 회복 도와야"
[인터뷰] 프랑스 정계 대표적 '중국통' 라파랭 전 총리
"2003년 사스 사태 당시 국제사회가 함께 행동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는데, 지금은 미·중이 격돌하고 있다.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중요한 것은 연대다.

"
프랑스의 장피에르 라파랭(71) 전 총리는 프랑스에서 중국을 가장 잘 알고 중국의 권부 깊숙한 곳까지 끈이 닿는 인물로 꼽힌다.

50년간 중국을 100차례 넘게 왕래하면서 중국의 권부와 정·재계 리더들과 인맥을 다졌다.

작년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서 중국 건국 70주년 기념 우정 훈장을 받기도 했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 재임 당시 프랑스 내각을 이끈 그는 2003년에는 중국 출장을 앞두고 사스(SARS·중증호흡기증후군) 사태가 터졌지만, 중국 방문을 강행해 당시 중국의 사스 대처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경험이 있다.

코로나19의 위세가 여전한 프랑스에서 전국적 봉쇄령이 이어지는 가운데 파리의 자택에 칩거 중인 라파랭 전 총리를 지난 5일(현지시간)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그는 이번 코로나 위기에서 미·중 대립이 격화하는 것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는 한편, 한국의 위기관리에 대해선 자유와 안전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데 성공한 사례라고 호평했다.

라파랭이 프랑스의 전·현직 정치인 중에 중국을 가장 잘 아는 인사로 꼽힌다는 점에서 이번 인터뷰는 주로 초강대국인 미국과 중국의 대립과 향후 국제질서 전망에 초점이 맞춰졌다.

다음은 라파랭 전 총리와의 서면으로 주고받은 문답이다.

-- 프랑스의 이동제한이 길어지고 있다.

어디서 어떻게 지내시나.

▲ 파리에서 내가 설립한 '평화를 위한 리더들'이라는 재단 일을 주로 보고 있다.

원격회의도 많다.

아내와 함께 잘 지내고 있는데, 아시아 여행과 한국 친구들이 그립다.

-- 당신의 고향에서 일하는 의료진을 위해 중국에서 의료용품을 지원받도록 힘썼다는 기사를 읽었다.

당신은 프랑스 정계에서도 가장 친중(親中) 성향의 인사로 꼽히는데 처음에 중국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당신이 본 중국의 가장 큰 강점은 무엇인가.

▲ 1970년 학생으로 처음 중국에 갔다.

50년 동안 100번 넘게 중국을 방문했다.

아시아에 항상 관심이 많았다.

중국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는 아니지만, 중국의 발전상을 지켜봐 왔다.

중국은 객관적으로 봐도 50년간 눈부신 발전을 했다.

중국의 가장 큰 장점은 시장의 크기, 풍요로운 문명, 국민들의 용기, 혁신에 대한 욕구다.

내 고향 푸아티에의 병원은 중국으로부터 많은 양의 기증품을 받았다.

이번 사태에서 프랑스와 중국은 연대를 보여줬다.

-- 파리주재 중국대사가 프랑스 외무부에 불려가 항의를 받았다.

앞서 중국 외교관은 대사관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코로나19에 대한 서방의 대응을 비판하고 프랑스의 노인요양시설 직원들이 수용자들을 죽게 방치했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이런 행동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 모든 대형 위기에서 신경이 예민해지는 일이 있게 마련이다.

세계적 수준에서 이번 위기는 매우 정치화됐다.

중국과 미국의 긴장 고조가 현 국제관계 구조를 고착시키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프로파간다(정치적 선전)에 나서려는 유혹이 강하다.

바이러스와의 싸움이 민족주의화하는 경향은 적대 관계를 부추긴다.

나는 항상 긴장보다 협력이 좋다고 생각한다.

[인터뷰] 프랑스 정계 대표적 '중국통' 라파랭 전 총리
--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중국이 코로나19에 잘 대처했다고 말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라며 "중국에서 일어났지만, 우리가 모르는 것들이 확실히 존재한다"고 중국을 건드리는 발언을 했다.

중국이 코로나19 사태를 잘 막았다고 하지만 이처럼 중국이 발표하는 데이터를 신뢰하지 않는 기류가 강하다.

과연 중국을 신뢰할 수 있는가.

▲ 마크롱 대통령은 중국과의 관계에 관심이 큰 사람이다.

이 바이러스의 특성과 기원에 대해 의구심이 드는 것도 매우 자연스럽다.

우린 세계적 감염병의 한복판에 있다.

이 사태를 분석하고 또 교훈을 얻을 때가 오겠지만, 당장 중요한 것은 연대다.

위기의 심각함에 대한 인식, 필요한 물자 마련, 의학적 협력에 있어서 모든 나라가 강점과 약점을 드러내고 있다.

성적을 매기기는 아직 너무 이르다.

시간이 흐르며 투명해질 것이다.

--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한국의 모바일 정보를 이용한 방역이 처음에 프랑스에서 인권침해라며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프랑스와 다른 유럽국가들도 이런 방식을 추진한다.

중국의 강제적 방식을 제외하면 한국식 방식이 민주주의 국가들이 채택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 공공적 자유와 개인정보 보호는 프랑스의 국가적 합의다.

많은 국가 제도가 이를 위해 존재하며 특히 상원이 이 부분에 명망이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치안을 위해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비디오감시(CCTV)를 요구하고 있다.

일례로, 2016년 대형 테러를 겪은 니스는 시범운영을 승인받았다.

프랑스는 관심을 갖고 한국의 방식을 들여다보고 있으며, 자유와 안전 사이의 균형점을 찾으려 한다.

한국은 이런 과제에서 성공을 거뒀다.

한불의원 친선협회장인 카트린 뒤마 상원의원이 이 문제를 주의 깊게 보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한국의 효율성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자유를 중시하는 프랑스에서 디지털 혁명이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부분도 존재한다.

-- 한국에선 프랑스가 초기 대처에 실패하고서 뒤늦게 이동의 자유를 극단적으로 제한한 것에 비판이 있다.

일부는 아시아의 코로나19 확산 당시 프랑스 등 서구 국가들의 대처에서 서구 우월주의적 편견이 작용했다는 지적도 한다.

▲ 민주주의 진영에서 다양성은 매우 크다.

한국, 이탈리아, 미국, 프랑스 등은 모두 각자 다른 민주주의 체제다.

권위주의 체제가 강력한 현 세계에서 민주주의 국가들은 서로 간에 충분히 대화하지 않고 있다.

이 주제에 대해 서울에서 2년 전에 한 포럼에 참여한 적이 있다.

한국은 세계와 민주진영에서 중요한 목소리를 가진 나라다.

우리의 (우호) 관계는 중단 없이 지속해야 한다.

-- 2003년 중국에서 사스(중증호흡기증후군·SARS) 발생 당시 당신은 프랑스 총리였다.

그때 중국 방문을 취소하지 않고 강행했는데. 그때와 지금의 중국은 어떻게 다른가.

▲ 코로나19에 대한 중국의 대처는 사스 때보다 훨씬 더 빠르다.

중국은 이후 지금까지 세계의 강대국으로 재부상했고, 미국의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를 '투키디데스의 함정'(새로운 강대국이 부상하면 기존의 강대국이 이를 두려워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는 개념)이라 한다.

1위와 2위 간의 긴장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사스 때와 지금은 중대한 차이가 있다.

2003년엔 세계가 함께 행동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는데 지금은 두 리더(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격화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매일 이 주제(중국에 대한 비난)로 발언한다.

-- 이후 국제질서는 어떻게 재편될까.

중국과 미국의 대립은 더 심화할까.

▲ 세계 평화를 위한 유일한 길인 다원주의는 미국과 중국이 없이는 발전할 수 없다.

각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나서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국제 거버넌스는 공동의 책임이어야 한다.

미국이 유네스코(UNESCO)에 이어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발 빼는 것은 좋은 소식이 아니다.

프랑스는 미국과 중국이 상호존중에 기반한 건전한 양자 협력에 나서기를 바란다.

--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작년에 중국을 유럽의 파트너이자 체제의 경쟁자(system rival)라고 규정했다.

코로나19 이전에 유럽과 미국의 중국에 대한 접근은 달랐다.

미국은 대립을, 유럽은 타협을 추구했다.

코로나19 이후 유럽, 특히 프랑스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어떤 리더십을 취해야 하나.

[인터뷰] 프랑스 정계 대표적 '중국통' 라파랭 전 총리
▲ 새로운 세계는 유럽과 중국이 경쟁자이자 동시에 파트너인 상황을 만들고 있다.

주권과 상호협력의 영역을 우리가 함께 정의해야 한다.

국제질서를 위해 협력을 극대화하고 긴장은 최소화해야 한다.

프랑스는 샤를 드골 이후 중국과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기로 했다.

우리의 외교정책에서 변하지 않는 부분이다.

유럽은 미국과 중국의 평화로운 관계 회복을 도와야 한다.

-- 당신은 지난 프랑스 대선에서 마크롱 지지를 선언했다.

지지는 여전히 유효한가.

마크롱이 이 위기를 잘 극복하리라 보나.

▲ 나는 위기의 한가운데서 리더의 힘을 빼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프랑스가 이 위기를 잘 극복하리라 생각한다.

우리의 제도는 대통령에게 이런 큰 어려움을 극복할 수단을 제공하고 있다.

유럽은 리더십이 필요하며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뛰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