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싱턴호텔 주방장들이 코로나19 생활치료센터에 보낼 도시락을 싸고 있다.   /켄싱턴호텔앤리조트 제공
켄싱턴호텔 주방장들이 코로나19 생활치료센터에 보낼 도시락을 싸고 있다. /켄싱턴호텔앤리조트 제공
국내 호텔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지난달 피해액만 약 5800억원. 휴업과 폐업이 잇따르고 직원들 상당수는 휴직에 들어갔다.

하지만 코로나19 탓만 하며 좌절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가진 자산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했다. 결론은 ‘사회적 재난’에 대응해 ‘사회 인프라’가 되는 것이었다.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자가격리자 가족들을 대상으로 실비만 받고 빈 객실을 제공했다. 호텔 셰프들은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의 도시락을 쌌다.

한 호텔 관계자는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감수해야 했지만 어려운 시기를 함께 극복해나가는 가치 있는 행동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자가격리 가족에 반값 숙소…'특급호텔'도 나섰다
롯데·신라 등 안심숙소 제공

15일 호텔업계에 따르면 롯데호텔은 이달부터 롯데시티호텔 구로와 울산, 롯데호텔 울산 등 세 곳을 ‘안심숙소’로 내놨다. 총 832개 객실이다. 신라호텔은 신라스테이 역삼·서초·삼성·동탄·울산·해운대 등 6곳, 1948개 객실을 안심숙소로 운영 중이다.

안심숙소는 코로나19 자가격리자 가족들이 머무를 수 있는 곳이다. 자가격리자가 집에 있으면 그 가족이 지낼 별도의 공간이 필요하다. 호텔이 안심숙소의 대안이 되겠다고 자청했다. 가격은 최대 반값 정도로 제공하고 있다. 장사해서 돈을 벌려는 의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신라스테이 서초는 2인실 기준 1박에 13만원인 객실을 약 40% 할인한 8만원에 제공한다. 서울 중구 안심숙소인 밀레니엄힐튼호텔은 조식을 포함한 1박 가격이 15만원이다.

일부 호텔은 장기간 투숙 가능한 ‘자가격리자 가족 패키지’도 내놨다. 글래드호텔앤리조트가 대표적이다. 해외입국자 가족만 이용할 수 있는 ‘가족사랑’ 패키지를 제공하고 있다. 최소 7박 이상 머무르는 조건이다. 1박 가격은 6만원(스탠더드룸 기준)이다.

자가격리자 가족을 수용하기 위해 방역도 강화했다. 대부분 호텔은 로비에 열화상 카메라를 설치했다. 세스코 등 방역업체를 통해 수시로 방역한다. 포포인츠 강남은 매일 두 시간마다 호텔 내부와 외부를 소독하고 있다. 글래드호텔앤리조트도 하루 2~3번씩 방역한다.

각 지방자치단체도 호텔에 도움을 청하고 있다. 해외입국자가 많은 서울 강남구를 비롯해 경기 성남·과천·광명시, 울산시 등이 호텔과 협업에 나섰다. 서울 서초구 관계자는 “호텔 대부분이 안심숙소 요청을 흔쾌히 받아줘서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도시락 싸는 호텔 셰프들

켄싱턴호텔앤리조트는 셰프들이 나서서 도시락을 제공하고 있다.

사연이 있다. 이 호텔은 지난달 초 정부에서 연락을 받았다. 경주 보문단지 내 켄싱턴리조트를 생활치료센터로 지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생활치료센터는 코로나19 경증 환자와 무증상자들이 머무르는 곳이다. 하지만 경주시의회와 민박협회 등이 “관광도시 이미지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며 반대했다. 지정은 취소됐다.

켄싱턴호텔은 방법을 바꿔 도시락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김순기 켄싱턴호텔앤리조트 조리총괄 상무가 지휘했다. 전국 지점의 주방장 20여 명이 자원해 일손을 도왔다. 매일 하루 세 번 도시락 400개씩을 보냈다. 지난 20일간 총 2만4000개의 도시락을 코로나19 환자와 의료진 등에게 전달했다.

인터컨티넨탈호텔 서울도 지난 2월부터 매주 강남구 선별진료소에 호텔 셰프들이 만든 도시락과 샌드위치, 호텔 내 제과점의 빵 등을 보내고 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