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멸종되지 않으려는 수컷들의 몸부림
자연계에는 수컷이나 암컷이 각각 개체로 존재하지 않아도 번식 가능한 생물이 많다. 그런데 인간처럼 굳이 서로 다른 성을 가진 생물이 있는 까닭은 뭘까.

일본의 ‘기생충 박사’ 후지타 고이치로가 쓴 생물학 에세이 《유감스러운 생물, 수컷》은 이런 의문에서 시작한다. 저자는 수컷들에게 안타까운 상황이 연출되는 ‘성 차이’에 집중한다. 그는 현대사회에서 남성의 자살률이 높은 현상을 언급하며 “생물계엔 고난의 연속인 수컷투성이들뿐”이라고 말한다. 붉은등과부거미 수컷은 교미 후 암컷의 먹이가 되고, 수컷 공작은 생존보다 번식을 위해 화려하게 진화했다. 수컷 바우어새는 암컷을 유혹하려 면역력이 떨어지는 위험을 감수하고 볏이나 육수(肉垂)를 크게 만든다. 생명을 내놓으면서까지 필사적으로 암컷에게 인기를 얻으려 아름답고 강하게 진화하는 수컷들의 모습은 ‘멸종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는 “이렇듯 동물의 세계에서 다양성은 생존의 제1전략”이라고 강조한다. 달팽이, 굼벵이, 지렁이, 군소 등 자웅동체 생물이나 물고기 파라고비오돈이 환경에 따라 성을 바꾸는 것도 결국 생존을 위한 자신들만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수컷’과 ‘암컷’이란 성별을 넘어선 다양한 생물 이야기를 바탕으로 저자는 ‘남자가 영원히 여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 ‘남자가 하이힐에 끌리는 생물학적 이유’ 등 남녀의 서로 다른 가치관과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문제들로까지 사고를 확장시킨다. 이를 통해 ‘인간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한다.

책은 수컷들이 멸종을 피하고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남기기 위해 애쓰는 중심엔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인간이 오랫동안 가져왔던 전형적인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균일화와 평준화는 결국 오늘날 인류를 멸종의 위기에서 더 취약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성별이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성 차이의 인정으로 이어져 결국 생물들이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됐고, 그 다양성 덕에 각각의 종은 서로 다른 방식의 진화를 선택했다”며 “유감스러운 수컷들의 행동이야말로 생존이란 중요한 문제를 성실하게 완수하는 가장 지혜로운 전략”이라고 강조한다. (혜원 옮김, 반니, 196쪽, 1만3800원)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