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전염병과 여론 형성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우리 생활 전반을 크게 위축시키고 있다. 한동안 코로나19 확산이 주춤하는가 싶더니, 확진자 수가 최근 이틀 사이에 무더기로 늘어나면서 우려를 키우고 있다. 지난 주말까지만 해도 정부 방역망에 대해 칭찬의 목소리가 컸지만 이번주 들어서는 신뢰도가 크게 낮아졌다. 전염병은 이렇듯 그 실체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테러나 여타 범죄보다 오히려 더 공포스럽다.

《총, 균, 쇠》라는 책으로 유명한 재레드 다이아몬드 미국 UCLA 교수는 큰 해악을 끼치는 전염병의 두 가지 특성을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첫째, 전염성이 강해야 하고 둘째, 숙주를 너무 빨리 죽이지 않아야 한다. 전염성이 강해야 한다는 점은 이해하기 쉬운데 너무 치명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점은 흥미롭다. 너무 치명적이면 전염병은 전이되기 전에 소멸되고 만다는 얘기다.

요즈음 경기를 결정하는 중요 요소로 사람들의 ‘기대’를 드는데, 기대는 여론에 의해 형성되고 사람 간의 전이를 통해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전염병과 비슷하다. 그렇지만 여론 형성은 전염병의 전이와 중요한 차이점도 가지고 있다.

여론은 사람들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알아내려는 과정에서 형성되는데 이런 점에서 전염병과 다르다. 전염병은 숙주가 자신에게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지 않을 때 퍼지곤 한다. 하지만 여론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의 산물이다. 많은 사람이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발견하면 사람들은 그 많은 사람이 틀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믿음에 그리고 자신도 올바른 의사결정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들을 따라 한다.

만일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판단되면 이를 따를 이유가 없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어떤 숨은 의도가 있는지, 그 의도는 무엇인지 파악하려고 한다. 광고성 글에 사람들이 의구심을 품는 이유다.

전염성이 강한 질병처럼 여론도 그 영향력은 눈덩이처럼 확산된다. 많은 사람에게 쉽게 알려질수록 전파가 쉽고 영향력도 크다. 이 때문에 광고주들은 발행 부수가 많은 매체에 광고를 한다. SNS에서 팔로어가 많은 사람들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도 같은 원리다. 일단 접촉면이 크면 전염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전염병의 치명도와 잘못된 여론이 갖는 해악성의 관계다. 전염병이 숙주를 일찍 죽이면 그 병은 전염되기도 전에 소멸된다. 이와 비슷하게 어떤 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여론이 그를 믿고 따라 하는 사람들을 해친다면 전달하는 매체는 금세 효력을 잃게 된다.

여론의 경우 그 내용이 올바른지는 머지않아 밝혀지곤 한다. 어떤 유명한 블로거의 의견을 따라 하는 사람이 많아 자신도 따라 했는데 그 결과가 별로 좋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그 블로거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 어떤 신문이나 방송의 보도를 믿고 따랐는데 나중에 보니 그것이 특정 집단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다거나 상업적 이해를 가진 광고성 글이었고, 자신이 이용당했다면 해당 글은 물론 그 매체도 신뢰하지 않게 된다.

여론의 형성은 그를 전달하는 매체가 얼마나 올바른 내용을 담는가에 따라 전파력이 정해진다. 많은 자본을 들여 접촉면이 큰 매체를 만들더라도 전달하는 내용이 올바르지 않다면 그 매체는 살아남을 수 없다. 요즈음 많이 회자되는 실시간 검색을 자신이 알리고자 하는 방향으로 조작하거나 여론몰이를 하려는 불법적 시도는 그 불법성이 확인되기 이전에 이를 파악한 사람들이 실시간 검색에 부여하는 의미를 줄임으로써 무력화시킨다. 요 근래 많이 접하는 여론조사도 어떤 집단의 이해로 인해 왜곡되거나 정확성이 떨어지면 그것을 신뢰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조사의 정확성은 더욱 낮아지게 된다.

마치 숙주를 일찍 죽이는 전염병처럼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도 그를 수용하는 사람들을 해쳐선 안 된다. 올바른 여론 형성을 도와주는 언론 매체가 왜곡을 일삼는 행태로 인해 무력화된다면 우리 사회는 사람들의 참된 기대를 반영하는 경제정책을 펼 능력을 잃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