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파생상품 등 판매 땐
모든 가입자 녹취 의무화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업은행은 올 들어 전 영업점에서 만 80세 이상 고객의 고위험 파생결합상품 가입을 전면 제한했다. 파생결합펀드(DLF)와 주가연계펀드(ELF) 파생결합신탁(DLT) 주가연계신탁(ELT) 등이 대상이다. 만 70세 이상에게는 판매할 수는 있지만 판매 실적을 직원의 핵심평가지표(KPI)에 넣지 않기로 했다. 또 파생상품에 가입하는 모든 고객에 대해 전 판매 과정을 녹취하도록 했다.
기업은행이 이 같은 영업 정책을 시행한 것은 지난해 DLF 손실 사태를 계기로 소비자 보호 기준 강화의 필요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고객이 상품을 선택할 권리를 과도하게 제약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기업銀 "70代에 DLF 팔아도 실적 인정 안해"
소비자 보호 정책 강화
기업은행이 80세 이상 투자자에게 파생상품 판매를 금지한 것은 초고령자에 대한 불완전 판매 위험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지난해 해외 금리 파생결합펀드(DLF) 손실 사태 당시 금융 지식이 없는 고령 투자자에게 원금 손실 가능성이 큰 상품을 판매한 것이 도마에 올랐기 때문이다. 대부분 은행이 고령 투자자들을 위한 보호 장치를 강화하고 있지만 파생상품 가입 자체를 막은 사례는 처음이다. 고령 고객에 대한 무리한 영업 관행을 없앤다는 취지지만 투자자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비판도 있다. “불완전 판매 위험 원천 차단”
기업 은행이 연령대별 투자 상품 판매 제한 정책을 내놓은 것은 지난해 DLF 손실 사태가 계기가 됐다. 기업은행은 당시 해외 금리 DLF를 상품 검토 단계에서 걸러내 사고는 피했다. 그러나 투자 경험이 없는 투자자가 원금 전액 손실을 보는 등 극단적인 사례가 나오면서 은행권 전반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이에 따라 기업은행은 지난해 말 투자 상품 관리 태스크포스(TF)팀을 마련해 관련 대책을 논의해 왔다.
80세 이상 투자자에게 파생상품 판매를 금지한 것은 초고령자에 대한 불완전 판매 위험 가능성을 아예 없애겠다는 극약 처방이다. 원금 보장 가능성이 큰 안전한 상품만 팔기로 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금융 지식이나 판단력이 비교적 떨어질 수 있는 고령 투자자들에게 무리하게 투자 상품을 판매하는 것을 막자는 취지”라며 “80세 이상이라 하더라도 공모형 펀드나 일반적인 주식·채권형 상품은 가입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기업은행은 다른 투자자 보호 대책도 내놨다. 투자자 성향 분석은 최대 1일 1회로 제한했다. 본인 투자 성향에 맞지 않는 상품 가입을 위해 분석을 다시 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서다. ‘안정추구형’으로 분류되면 고위험 상품 가입을 제한했다. 기존에는 안정형만 가입할 수 없었다.
초고령자 보호 바람…“권리 침해” 비판도
다른 국내 은행들도 초고령자에 대한 투자자 보호 장치를 지속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만 80세 이상 고객에게는 투자 상품을 권유할 수 없다. 70세 이상의 고객이 손실 가능성이 있는 투자 상품의 가입을 원할 경우에는 가족이나 친지 등 조력자 정보를 등록하고 시니어 투자자 체크 리스트 및 투자 권유 유의 상품 가입 확인서를 추가로 작성해야 한다. 영업점장 확인도 필요하다.
국민은행도 80세 이상 고객이 고위험 투자 상품 가입을 원할 경우 가족이 함께 영업점을 방문하도록 하는 규정을 뒀다. 가족 참여가 어렵다면 관리직 직원이 동석해야 한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말부터 80세 이상 투자자는 투자 성향만 분석할 때도 의무적으로 녹취하도록 했다. 농협은행은 만 70세 이상 고객이 파생상품에 가입하면 이틀간 숙려 기간을 준 뒤 가입시키도록 했다. 하나은행은 투자자성향 확인콜(전화) 대상을 기존 만 70세에서 만 65세 이상으로 이달부터 확대했다.
초고령자에 대해 특정 상품 가입 자체를 막은 첫 사례가 나오면서 다른 은행에도 이 같은 분위기가 확산될지 관심사다. 다만 일각에서는 투자 경험과 전문성이 있는 초고령자를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조치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한 시중은행의 프라이빗뱅킹(PB) 고객은 “고령층 고객의 자산관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데 아예 가입을 제한한 것은 과도한 조치”라며 “연령을 기준으로 차별한다는 비판도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소람/정지은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