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산한 김포공항 국내선 창구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확산으로 여행 수요가 급감한 가운데 11일 김포공항의 국내선 창구도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 한산한 김포공항 국내선 창구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확산으로 여행 수요가 급감한 가운데 11일 김포공항의 국내선 창구도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사태가 확산하면서 국내 항공·여행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해 일본(‘노 재팬’ 운동)에 이어 올 들어 중국 노선 운항까지 사실상 끊기면서 국내 6개 저비용항공사(LCC) 중 네 곳이 무급휴직에 들어갔다.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가는 여행객이 급감하면서 여행사들도 폐업 위기에 내몰렸다.

11일 항공정보포털시스템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9일까지 국내 6개 LCC를 이용한 여객은 100만8843명으로 집계됐다. 1년 전 같은 기간(164만5970명)보다 39% 줄었다.

200석 이하 항공기로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등 단거리 노선을 운항하는 LCC들은 지난해 일본 노선을 놓치며 대거 적자로 돌아섰다. 국내 최대 LCC인 제주항공은 지난해 329억원 영업적자를 냈다고 이날 발표했다. 티웨이항공(-192억원) 진에어(-491억원) 에어부산(-500억원 추정) 등도 줄줄이 적자 전환했다. 2018년 2000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냈던 이들 4개 상장 LCC가 지난해 1500억원가량의 적자를 낸 것이다.

LCC들은 올 들어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지로 눈을 돌려 실적 개선을 노렸지만, 우한 폐렴이라는 복병을 만났다. 제주를 오가는 여객 수요마저 급감하면서 “비행기를 띄울 곳이 없어졌다”는 탄식이 나오고 있다. 제주항공 티웨이항공 이스타항공 에어서울은 직원들에게 무급휴직 신청을 받고 있다. 국내 여행사들의 줄도산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하나투어와 모두투어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근무시간을 단축했다. 레드캡투어 등은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日 이어 中 하늘길 대거 닫혀…LCC "비행기 띄울 곳이 없다"
'우한 폐렴' 쇼크 탑승객 40% 급감…최악의 경영위기


지난 10일 인천국제공항. 베트남 다낭으로 향하는 한 저비용항공사(LCC)의 좌석이 듬성듬성 비어 있었다. 200여 석 중 탑승객이 앉은 좌석은 절반도 안 됐다. 이 항공사 관계자는 “탑승률이 47%”라고 했다. 그는 “통상 1~2월은 동남아시아 여행의 성수기”라며 “지난해 2월 이 노선의 평균 탑승률은 97%로, 모든 항공편이 만석이었다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사태가 국내 LCC를 덮쳤다. 지난해 한·일 경제전쟁에 따른 ‘노(no)재팬’ 운동 여파로 시련을 겪었던 LCC들이 올 들어선 우한 폐렴 사태로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는 분석이다.

“더 이상 갈 데가 없다”

제주항공을 비롯한 국내 LCC들은 지난해 일본 노선을 대폭 줄여야 했다. 지난해 하반기 노재팬 운동이 본격화하면서 일본 여행 수요가 급감한 탓이다. 국내 6개 LCC의 일본 노선 운항 횟수는 지난해 6월 말 주당 1260회에서 12월 말엔 658회로 반 토막 났다. LCC업계 관계자는 “한국 여행객이 많이 찾는 삿포로 가고시마 다카마쓰 등의 노선이 폐지되거나 감편됐다”고 말했다.

LCC들은 일본 노선에 투입된 비행기를 중국이나 대만 등지로 돌렸다. 하지만 우한 폐렴 사태가 터지면서 중국 노선도 대거 끊겼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국적 항공사 8곳(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포함)의 중국 운항 횟수는 올 1월 초 주 546회에서 지난 9일 주 162회로 70% 급감했다.

일본, 중국에 이어 마지막 대안이었던 동남아 노선까지 사실상 막히면서 LCC들은 비행기를 띄울 곳이 없어졌다. 해외 여행객이 급감한 가운데 정부는 이날 중국 외에 싱가포르, 일본, 말레이시아, 베트남, 태국, 대만 등지로의 여행과 방문을 최소화해달라는 권고문을 발표했다.

LCC들은 가까운 곳을 자주 왕복하며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대형 항공사(FSC)들의 빈자리를 메우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LCC들이 보유한 항공기는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아 한국에서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곳이 말레이시아 정도다.

“올해는 살아남는 게 목표”

정홍근 티웨이항공 사장은 최근 상황에 대해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고 동남아, 대양주, 대만, 홍콩, 마카오까지 (피해 영향이) 더 어마어마하다”며 “어디를 갈까 둘러봐도 갈 만한 곳이 한 군데도 없다”고 토로했다. LCC들이 빈 좌석을 하나라도 채우기 위해 편도 3000원짜리 김포~제주 특가 항공권을 내놓는 이유다.

비행기를 놀리는 LCC도 속출하고 있다. 한 LCC 대표는 “비행기를 운항하지 못하는 것도 억울한데, 주기료(자동차의 주차료에 해당)까지 내야 한다”고 말했다. 공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보통 3~6시간 이상 비행기를 공항에 세워두면 주기료를 물린다.

이런 상황에서 실적이 좋을 리 없다. 제주항공 티웨이항공 진에어 에어부산 등 4개 상장 LCC는 지난해 1500억원가량의 영업적자를 봤다. 2018년에는 이들 4개 LCC가 2324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실질적인 지원책 필요”

LCC들은 올해 상황이 최악으로 여겨졌던 지난해보다 더 안 좋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제주항공을 비롯한 티웨이항공 이스타항공 에어서울 등 4개 LCC는 올 들어 무급휴직에 들어갔다. 회사마다 최소 한 달부터 직원들이 원하는 기간만큼 휴직 신청을 받고 있다. 인건비라도 줄여보기 위한 몸부림이다.

정부도 나섰지만 별 도움은 안 된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지난 10일 국내 항공업계 최고경영자(CEO)들과 간담회를 하고 항공업계 지원 대책을 논의했다. 김 장관과 항공사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인 건 2017년 장관 취임 후 처음이다. 김 장관은 이 자리에서 항공사들의 한·중 운수권(노선 운항권리)을 연장해주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항공사 CEO들은 “언 발에 오줌 누기”라고 지적했다. 한 참석자는 “우한 폐렴 사태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인 만큼 운수권 연장보다는 비행기를 세워둘 때 내는 비용을 감면해주고 업체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재후/이선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