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요코하마항에 정박 중인 대형 크루즈선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확진자가 무더기로 쏟아지고 있다. 5일과 6일에 10명씩 나왔던 크루즈선 우한 폐렴 감염자가 7일에는 무려 41명이나 추가로 확인되면서 일본 사회를 패닉으로 몰아넣었다. 일본 내 전체 감염자 수도 순식간에 86명까지 치솟았다. 좁고 폐쇄된 선실에 3700여 명이 밀집해 생활하는 크루즈선의 특성상 한 번 퍼진 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요코하마항에 정박 중인 대형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서 7일까지 감염이 확인된 우한 폐렴 확진자는 61명이다. 61명의 확진자는 탑승자 중 발열, 기침 등의 증상이 있거나 확진자와 밀접 접촉한 273명에 대한 검사에서 나왔다. 이 크루즈선엔 한국인 14명이 탑승하고 있지만 감염자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승무원과 승객 등 총 3711명의 탑승자 중 아직 검사를 받지 않은 3438명 가운데서도 추가 환자가 발생할 수 있다. 중국 등 다른 지역에서 수차례 검사에서도 음성으로 나오다가 양성으로 전환된 사례가 적지 않아 273명 중에서 추가 확진자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바이러스가 번지면서 크루즈선이 ‘바이러스의 온상’ ‘물 위의 우한’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처럼 바이러스가 급속하게 퍼진 것은 크루즈선 특유의 환경 때문으로 분석됐다. 12만t급 대형 크루즈선인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는 선내에 뷔페식으로 제공되는 무료 레스토랑과 유료 스시(초밥)식당, 바, 카지노 등을 갖추고 있다. 공중목욕탕과 사우나, 수영장, 대형 극장 등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공용공간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홍콩인 확진자가 이 크루즈선에 탑승했던 사실이 확인된 뒤에도 크루즈선 내에서 각종 공연과 이벤트가 중단되지 않고 열렸다. 홍콩 환자가 탑승했던 사실이 알려진 게 이달 2일인데 4일까지 크루즈선이 탑승자 선실 격리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선실 격리는 5일에서야 이뤄졌다. 이 크루즈선의 국적은 영국이지만, 일본에 여행업 등록을 해놓고 있으며 대표이사도 일본인이고 주로 일본과 동남아시아를 다녀 관리책임은 일본 정부에 있다.

크루즈선 특성상 중장년층이 많이 이용하는 점도 감염률을 높인 원인으로 꼽힌다. 고령자는 면역력이 떨어지고 지병이 있는 경우가 많아 감염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세 자릿수 환자 발생을 눈앞에 둔 일본 정부는 사태 축소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가토 가쓰노부 일본 후생노동상은 7일 기자회견에서 “일본 국내에서 감염된 숫자는 25명”이라며 “크루즈선 감염자는 ‘기타’로 기재하고 국내 감염자와 합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3만1161명의 감염자에 636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진원지 중국에 이어 일본이 감염자 수 2위 국가로 표기되는 것을 피하겠다는 꼼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자칫 전염병이 만연한 국가로 낙인찍혀 올여름 도쿄올림픽의 흥행에도 불똥이 튈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크루즈선 헛발 대응으로 곤경에 처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후속조치로 강경책을 매만지고 있다. 아베 총리는 전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긴급각료회의를 소집해 우한 폐렴 감염자가 탑승한 것으로 추정되는 크루즈선 ‘웰스테르담’호의 입항 거부 결정을 내렸다. 대만 역시 국제 크루즈선의 입항을 금지했다.

한국에선 중국에 입항하려던 크루즈선 7척이 기수를 돌려 부산에 입항하기로 했지만 관련 부처는 아직 어떤 대응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