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올드 랭 사인'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석별의 정)’은 애잔하고 슬픈 노래다. 이별의 노래답게 곡조도 느리다. 지난 29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합의안이 통과된 직후 유럽의회에 이 노래가 울려 퍼지자 눈물과 환호가 교차했다. EU 의원들은 떠나는 영국을 아쉬워했고 브렉시트를 밀어붙인 영국 의원들은 박수를 쳤다.

이들 앞에는 많은 난제가 쌓여 있다. 양측은 올해 말까지 자유무역협정 등 각종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 협상이 결렬되면 ‘노딜 브렉시트’(합의안 없는 EU 탈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는다. 가장 큰 문제는 무역 축소다. 예를 들면 독일에서 생산한 자동차를 영국에 수출할 때 지금까지는 무관세였지만 내년부터 10%의 관세를 내야 한다.

영국은행은 ‘노딜 브렉시트’가 실현되면 영국 국내총생산(GDP)이 8% 급감할 것으로 예상했다. 영국은 ‘이혼합의금’으로 불리는 300억파운드(약 46조원)를 2060년까지 분할 납부해야 한다. EU 회원국에 정착한 영국인, 영국에 있는 EU 국민 지위를 어떻게 할지도 숙제다.

EU는 핵 보유국이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영국의 이탈로 국제무대에서 입지가 좁아지게 됐다. 회원국 간 연대가 약화되면 추가 탈퇴국이 나올 수 있다. 국제관계 전문가들은 “브렉시트로 EU와 영국 모두 손실을 봤다”고 평가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EU가 영국을 잃은 건 미국이 텍사스를 잃은 것과 같다”고 진단했다. 텍사스 주는 한반도의 세 배가 넘는 넓이에 유전이 많은 ‘풍요의 땅’이다.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만만찮다. 교역 감소 등으로 글로벌 경제가 0.2%포인트 이상 생산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의 분리독립 움직임이 겹치면 ‘대영제국의 부활’을 외치던 영국이 ‘리틀 잉글랜드’로 전락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역시 영국과 새로운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 우리는 1948년 안익태의 ‘한국환상곡’이 나오기 전까지 ‘올드 랭 사인’ 멜로디에 맞춰 애국가를 불렀다. 지금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계가 밀접하게 맞물려 돌아간다. 새해 벽두 지구 저편에서 울려 퍼진 ‘이별의 노래’가 그래서 더욱 남의 일 같지 않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