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해병대 위기대응 특별부대가 지난 3일 이라크 바그다드 주재 미국대사관에서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다. 미국은 지난달 31일 이라크의 친이란 시아파 시위대가 미 대사관을 습격한 직후 병력을 대폭 늘렸다. 미국이 3일 바그다드공항에서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폭살하면서 이란과 미국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란이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혁명수비대(IRGC) 정예부대 쿠드스군 사령관 폭살 사건을 두고 미국에 강력한 보복을 다짐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이 보복하면 미국은 즉각 이란을 공격하겠다는 경고장을 날렸다. 현재로서는 이란이 대리군을 통한 보복에 나설 가능성이 높지만 자칫 양측의 충돌이 전면전으로 비화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고개를 들고 있다.트럼프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트윗을 통해 “이란이 미국을 공격한다면 미국은 이란을 더욱 세게 칠 것”이라며 “미국은 이미 이란 내 52곳을 공격 목표 지점으로 정해놨다”고 밝혔다. 그는 “공격 목표 52곳은 이란이 인질로 잡았던 미국인 52명을 상징한다”고 덧붙였다. 이란은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 당시 주이란 미 대사관에 미국인 52명을 444일간 억류했다.이란은 미군이 지난 3일 이라크 바그다드를 공습해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사망하자 미국에 강력한 보복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이란 국영TV는 이날 이란 남부 이슬람 시아파 성지인 쿰의 잠카란 모스크에 적기(赤旗)를 게양하는 모습을 방송했다. 이슬람 문화에서 적기를 올리는 것은 순교당한 이의 원수를 갚겠다는 뜻으로 통한다.이란 국영TV는 이날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가족을 찾아가 조문하는 모습도 생중계했다. 로하니 대통령은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딸에게 “우리(이란) 모두가 네 부친의 원수를 갚을 것”이라며 “미국은 이번 범죄로 향후 수년간 엄청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말했다.이란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에게 공식서한을 보내 ‘자위권’을 행사하겠다고 통보했다.호세인 데흐건 이란 최고지도자 군사 수석보좌관은 “(이란의) 대응은 틀림없이 군사적일 것이며, (미국의) 군사기지를 대상으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군사 대응’을 예고한 것이다. 그는 “이 시국을 끝낼 유일한 방법은 미국이 그들이 가한 타격에 준하는 타격을 받는 것”이라고 강조했다.중동 내 친(親)이란 세력은 이미 행동에 나섰다.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사망한 이라크 바그다드 일대에선 미군 기지와 미 대사관을 겨냥한 포격이 잇달아 발생했다. AP통신은 4일 주이라크 미국 대사관이 있는 바그다드 ‘그린존’에 박격포탄 두 발이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바그다드에서 북쪽으로 약 80㎞ 떨어진 알발라드 미 공군기지엔 카투사 로켓포탄 두 발이 떨어져 이라크 군인과 민간인 여럿이 부상했다. 이라크 친이란 민병대(PMF) 산하 카타이브 헤즈볼라도 미군기지 공격 계획을 드러냈다. 카타이브 헤즈볼라는 “이라크 군경은 오늘부터 미군기지에서 최소 1000m 이상 떨어져야 한다”며 “아니라면 (미군의) 인간 방패가 될 것”이라는 경고 방송을 내보냈다.이란 정부가 지정한 솔레이마니 사령관 추모 기간 이후 대리군 등의 공격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란 정부는 4~6일을 추모 기간으로 선포했다. IRGC는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장례식을 6일 테헤란에서 열 예정이다.미 국방부는 이날 중동에 병력을 긴급 증파한다고 발표했다. 미군 82공수부대 내 신속대응병력 3500명을 수일 내로 중동에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이 중동 일대에 배치한 미군 규모는 6만~8만 명에 이른다. 미국은 앞서 이라크 내 미국 시민권자에게 이라크에서 출국하라는 긴급 소개령도 내렸다.전문가들은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계속 고조되면 전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수잔 말로니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외교정책담당 부국장은 “이란 지도부는 지난 40년간 체제 유지를 위해 (미국과의)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피해왔지만, 이번에 오판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중동 정세가 뉴욕증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의 이란 군부 실세 제거 이후 중동에서의 무력 충돌 우려가 팽배하다. 오는 10일 나올 12월 고용지표를 보면 미국의 경기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전망이다.미국이 이란 쿠드스군(이란혁명수비대 정예군)의 사령관인 가셈 솔레이마니를 암살한 뒤 긴장이 고조되자 뉴욕증시는 연말 상승폭을 대부분 반납했다. 지난해 주가 급등으로 과매수 우려가 커진 상황이어서 지정학적 변수가 조정을 촉발할 수 있다. 미국과 이란의 추가적 충돌이 일어날 경우 차익실현 매물이 쏟아지는 등 대규모 매도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이런 지정학적 부담은 상당 기간 이어질 수 있다. 이번 불확실성은 단기간 내 해소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지난해 12월 신규 고용은 약 15만~16만 명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지난주 나온 제조업 지표가 부진한 만큼 고용에도 영향을 줬을지 주목된다. 앞서 미국 공급관리협회(ISM)가 발표한 12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7.2로, 예상과 달리 전월의 48.1보다 떨어졌다.미국과 중국의 1단계 무역합의가 미치는 영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15일 백악관에서 1단계 합의문에 서명할 것이라고 밝힌 뒤 잠잠해졌다. 새로운 돌발 뉴스가 나오지 않는 한 별다른 시장 이슈는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미국과 이란간 전면전 우려가 고조되면서 국제사회도 바쁘게 움직이는 모양새다.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을 견제하고 중동 내 입지를 키우기 위해 각각 이란 편을 들고 나섰다. 5일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전날 이란과 러시아, 프랑스의 외무장관과 각각 통화하고 미국과 이란간 갈등 상황에 대해 논의했다. 왕 부장은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과의 통화에서 “미군의 위험한 작전은 국제관계의 기본 규범을 위반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왕 부장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의 통화에서도 미국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군사 모험주의는 수용할 수 없다”며 “중국과 러시아가 현 중동 정세를 놓고 전략적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러시아는 중국과 같은 입장”이라며 “미국의 행동은 불법이며, 비난받아야 마땅하다”고 답했다. 중국 외교부는 “중국은 국제 관계에서 무력 사용을 반대하며, 중동 지역에서 평화를 지키는 데에 건설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성명도 냈다. 중국 관영 매체 다수는 미국의 중동정책이 중동 정세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하는 기사를 여럿 냈다. 미국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애틀랜틱카운슬의 바바라 슬라빈 이란미래연구소장은 미국 CBS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이란간 사이가 더욱 틀어지면서 러시아와 중국이 중동 내 영향력을 보다 키울 것”이라며 “이번 공습 사태의 승자는 러시아와 중국”이라고 말했다. 2015 이란핵협정(JCPOA) 당사국인 프랑스와 영국 등도 관련국과 정세 논의에 나섰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4일 바르함 살리 이라크 대통령과 통화했다. 엘리제궁은 “양국 정상이 추가적인 긴장 고조를 피하고, 이라크와 주변 지역의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벤 월리스 영국 국방장관은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과 통화 후 “모든 당사국이 긴장 완화에 나서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는 “국제법상 미국은 자국민에 대해 임박한 위협을 가하는 세력에 대항해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가 있다”며 미국을 옹호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