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공장 가동 뒤가 더 걱정인 '광주형 일자리'
지난해 12월 광주형 일자리사업을 시행할 광주글로벌모터스의 완성차 공장 기공식이 있었다. 노동계는 불참했다. 회사 경영진 퇴진, 노동이사제 도입, 임원급여 한도 제한 등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이 사업의 앞날이 순탄치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광주형 일자리가 노사상생 정신이 담긴 산물이라고 광주시는 홍보해 왔지만 대타협 모델로 평가받기에는 미흡한 구석이 많다. 무엇보다도 도를 넘어선 노동계 요구가 끝도 없이 이어지고, 광주시는 이런 노동계에 끌려다니고 있다. ‘사회적 대타협’이란 명분을 내세워 현대자동차와 산업은행 등의 ‘팔을 비틀어’ 투자를 받아냈지만 사업의 미래는 밝지 않다. 국내외 자동차회사들이 전기차 등 미래산업 투자를 위해 기존 인력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계획하고 있는 현실과 거꾸로 가는 흐름이다.

광주시는 연봉 3500만원, 5년 임·단협 유예 등 사회적 대타협의 의미를 내세우고 있지만, 이 약속은 지속성을 갖기 쉽지 않다.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이다. 새 공장에서 근무할 노사 당사자끼리 맺은 약속도 아니다. 그렇다고 국내 완성차 5사의 노조가 소속돼 있는 민주노총이 노동계 대표로 참여한 것도 아니다. 광주형 일자리가 공장 가동 뒤 더 걱정된다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우리나라 자동차 생산공장은 민주노총 노조가 장악하고 있지만 광주의 사회적 대타협 과정엔 한국노총이 참여했다. 자동차공장이 가동되면 민주노총을 상급단체로 한 노조가 들어설 가능성이 무척 크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한 약속은 휴지조각이 될 수도 있다.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더 큰 문제는 노조의 경영 개입 요구와 광주시의 원칙 없는 양보로 사회적 대타협의 본질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계가 요구하는 노동이사제는 공동결정법과 유한회사 그리고 산업별 노조체제가 정착돼 있는 유럽국가에서 운영되는 제도다. 주식회사와 기업별 노조체제가 주류를 이루는 한국에는 적합하지 않다. 임원의 급여 결정 역시 노조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용섭 광주시장은 “노정협의회 사무국 설치, 시민자문위 운영, 임원 적정임금 실현 등 노동계의 요구 사항을 적극 수용해 나가겠다”며 노동계 달래기에 나섰다. 노동계 압력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노동계는 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인 광주형 일자리사업의 사회적 대타협에 도장을 찍어준 것에 대해 위세를 부리는 듯한 행태를 보인다. 광주시는 이런 노동계의 심사가 뒤틀리지나 않을까 쩔쩔매는 모습이다.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깨뜨리는 실험을 하자는 취지는 온데간데없다. 광주형 모델이 단순한 지역 일자리 사업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광주시와 한국노총은 투자자들에게 한 노·사·민·정 간 대타협의 약속을 지킬 자신이 없으면 지금이라도 이 사업을 포기하는 게 맞다. 그래야 사회적 손실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 기업의 경쟁력과 일자리 창출은 뒷전으로 한 채 정치적 입지와 치적 쌓기만을 노린다면 사회적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과도한 욕심과 어설픈 타협, 온정적 노·정 관계에 얽매이다가는 배가 산으로 갈 수도 있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첫 삽을 뜨긴 했지만 갈 길은 더욱 험난해지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