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가 사흘째 이어진 25일 국회 본회의장의 자유한국당 의석에 문희상 국회의장을 비난하는 손팻말들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가 사흘째 이어진 25일 국회 본회의장의 자유한국당 의석에 문희상 국회의장을 비난하는 손팻말들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준(準)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이르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지 사흘 만인 26일 표결에 부쳐질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과 범여 군소 정당이 국회 의석 과반(148석) 이상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선거법 개정안은 표결에 들어가기만 하면 통과가 확실시된다. 민주당은 연말까지 ‘쪼개기 임시국회’를 연달아 열어 선거법에 이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과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도 일사천리로 통과시킨다는 계획이다.
與, 4차례 '쪼개기 국회'로 공수처법까지 처리…野 "헌법소원 청구"
꼼수 난무하는 임시국회

문희상 국회의장은 26일 임시국회를 소집할 예정이다. 이달 들어 두 번째 임시국회다. 민주당 원내 지도부 관계자는 “가능한 한 빨리 본회의를 열어 선거법 개정안부터 통과시킬 방침”이라고 말했다. 현행 국회법은 한 번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한 법안은 다음 임시국회 때 반드시 표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야는 선거법 개정안이 본회의에 오른 지난 23일부터 25일 밤 12시까지 사흘간 이 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지속했다.

민주당과 범여 군소 정당의 ‘4+1 협의체’(민주당·바른미래당 당권파·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는 의석수를 현행(지역구 253석, 비례대표 47석)대로 유지하되 비례 30석에 연동률 50% 적용(연동률 캡)하는 선거법 개정 합의안을 만들어 놓은 상태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법안엔 여야 의원 155명이 찬성했다.

자유한국당이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무더기 수정안’을 내 4+1 협의체 합의안의 표결을 지연시킬 수도 있다. 민주당은 이에 대비해 합의안을 가장 늦게 제출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법에 따르면 같은 의제에 대해 여러 건의 수정안이 상정된 경우 마지막에 제출된 수정안부터 표결에 들어가게 된다.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23일 첫 번째 임시국회 본회의 때 처리하지 못한 내년도 정부 예산 부수 법안 20건이 표결에 부쳐진 뒤 공수처 법안이 상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당이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예산 부수 법안에 대해 수십 건의 수정안을 제출해 표결을 막으면 민주당은 안건 처리 순서를 바꿔 공수처 법안을 먼저 상정시킬 가능성도 있다. 문 의장은 23일에도 22건의 예산 부수 법안 중 두 건만 처리한 뒤 27번째 안건이었던 선거법 개정안을 4번째로 앞당겨 기습 상정했다.

공수처 법안이 상정되면 한국당은 곧바로 2차 필리버스터에 돌입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을 위한 검찰청법 및 형사소송법 개정안도 이와 똑같은 절차를 거쳐 내년 초 열릴 임시국회에서 처리될 전망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민주당이 임시국회 소집 이튿날인 27일 본회의 개의를 시도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국당이 발의해 23일 본회의에 보고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한 탄핵안 표결을 막기 위해서다. 본회의에 보고된 탄핵안은 24~72시간 이내 처리되지 않으면 자동 폐기된다. 만약 26일 본회의가 열리면 홍 부총리 탄핵안 표결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대응책 없이 끌려다니는 한국당

한국당은 4+1 협의체의 선거법 개정 합의안이 본회의에서 통과되면 곧바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할 계획이다. 심재철 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4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오른 선거법 개정 원안과 다른 합의안을 상정한 것 자체가 위헌”이라며 “개정안 처리 땐 헌재에 효력 정지 가처분 및 권한쟁의 심판 청구도 할 방침”이라고 했다.

한국당 내에선 ‘손 한 번 제대로 못 쓰고 민주당 전략에 끌려다니고 있다’는 자조 섞인 말도 나온다. 한 한국당 초선 의원은 “당 지도부가 목숨을 걸고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를 막겠다고 했지만 필리버스터를 하는 것 외엔 뾰족한 대응책도 없는 상황”이라며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한국당만 큰 손실을 입었다”고 했다.

하헌형/김소현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