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플레이션 우려마저 제기되는 2020년 새해를 대비하는 기업과 정부의 연말 인사가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기업들은 극도의 불확실성 속에 더욱 과감한 쇄신·파격 인사로 비상경영에 돌입하는 모습이다. 롯데가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40%를 일시에 교체하는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를 단행한 데서 잘 드러난다.

4차 산업혁명이 불러오는 가파른 시대 변화를 능동적으로 준비하기 위한 재계의 쇄신 인사는 전방위적이다. GS그룹을 반석 위에 올린 허창수 회장이 “디지털 혁신 리더십을 갖춘 새 리더가 필요하다”며 전격 퇴진한 게 대표적이다. LG그룹은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미래기술 분야 기회 창출을 위해 임원 승진자 60%를 이공계로 채웠다. ‘LG 가전 신화’의 주역 조성진 부회장이 용퇴했고, LG생활건강에선 30대 여성 상무가 3명이나 선임됐다. 한화도 7개 대표기업 CEO를 교체했다.

온라인 유통과 ‘플랫폼 경제’라는 거대한 변화에 맞닥뜨린 유통업계의 인사 쇄신은 기업들의 위기의식을 잘 보여준다. 유통 선두 롯데는 백화점 마트 슈퍼 e커머스 등 대부분 사업부문을 젊은 수장으로 교체했다. 과감한 외부 수혈도 잇달아 이마트의 경우 외국계 컨설팅사의 컨설턴트가 대표로 영입됐다. 현대백화점도 의류회사 한섬 사장을 CEO로 스카우트했다.

반면 청와대와 정부는 작년 하반기부터 거의 한 달에 한 번꼴의 총선용 ‘땜질 인사’로 국정공백을 자초하는 모습이다. 때이른 지난해 6월부터 시작돼 그제 단행된 차관급 교체까지 벌써 13번째다. 장·차관, 청와대 경력이 총선 출마자들의 이력서를 채우는 용도로 전락했다는 자괴감이 들 수밖에 없다.

정부의 쇄신 불감증은 인사를 넘어 국정 전반에서 목격되고 있다. 1%대 저성장이 유력한데도 “우리 경제의 변화가 긍정적”이라며 정책 기조를 고집한다. 외부에서 수혈한 이마트 대표가 취임 한 달 만에 그룹 최고경영자의 야심작인 ‘삐에로쑈핑’을 접는 구조조정 결단을 내렸다. 지금 정부에 필요한 것도 성역 없는 쇄신 의지와 이를 추진할 용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