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깨·고추 창고에 가득…배추·사과·감 수확 포기할 수밖에
"암 환자 무더기로 나온 마을 농산물이라 기피"…상인 발길 '뚝'
"정부 잘못 인정했으니 전량 수매로 살길 열어줘야" 눈물의 호소
[르포] '암 집단 발병' 장점마을 "농산물 판로도 막혀 살길 막막"
"상인들 발길이 완전히 끊겼습니다.

암 환자가 무더기로 나온 마을에서 나온 농산물이라는데 누가 사 먹고 싶겠어요?"
암 집단 발병으로 고통받는 전북 익산시 장점마을 주민들이 농산물 판로가 막히면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집집이 팔지 못한 콩이며 고추, 깨와 같은 농작물이 창고 가득 쌓여있고 들판 곳곳에는 수확을 포기한 배추며 사과, 감 등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주민들은 치료비 마련도 못 할 형편이라면서, 정부가 잘못을 인정한 만큼 전량을 수매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3일 찾은 장점마을 안 400여㎡ 남짓한 밭에는 배추 300여포기가 서리를 맞은 채 썩어가고 있었다.

사가겠다는 사람이 없어 방치한 것이다.

올해 배추 작황이 좋지 않아 없어서 못 팔 지경이라지만 모두 남의 동네 이야기다.

포기당 4천∼5천원을 호가하는 만큼 앉아서 100만원 이상을 날린 셈이다.

공짜로라도 도시에 있는 일가친척들에게 보내주려 했으나 모두 손사래를 쳤다고 한다.

'암 동네'에서 생산된 것이어서 찜찜하다는 이유에서다.

농민 K(57)씨는 "자식같이 키운 배추다.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마음이 참 아프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르포] '암 집단 발병' 장점마을 "농산물 판로도 막혀 살길 막막"
그가 판로를 찾지 못한 것은 배추만이 아니다.

창고에는 콩 50여가마(40㎏들이)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1년 내 피땀 흘려 농사지은 것으로 무려 2천여만원어치나 된다.

그는 "아무도 사 가려는 사람이 없다.

평소 거래하던 상인들이 발길을 끊은 건 오래전이고, 이제는 전화도 받지 않으려 한다"며 "한 가마니도 못 팔고 고스란히 창고에 쌓아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아내는 "보통 고추나 콩, 깨와 같은 밭작물은 도시에 나가 있는 가족이나 친척들이 알음알음 소개해주는 사람에게 판다.

장점마을에서 나온 것을 다 아는데 누가 소개를 해주려 하고, 누가 사가려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암을 유발한) 비료공장이 문을 닫은 지 3년이나 돼 농작물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익산시에서 실시한 각종 검사에서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이미 암 동네로 낙인이 찍혀 아무도 거들떠보지를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농사지어 먹고 사는데, 살길이 막막하다.

암에 걸린 집들은 치료비 마련도 못 할 형편"이라고 덧붙였다.

[르포] '암 집단 발병' 장점마을 "농산물 판로도 막혀 살길 막막"
옆집에 사는 한문석(63)씨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한씨의 비닐하우스 안에는 따다 만 고추가 그대로 매달려있었다.

사과밭에는 땅에 떨어진 사과가 수북이 쌓인 채 널려있었다.

고생해서 따봐야 사 갈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모두 수확을 중단한 것이다.

고구마라도 심을까 해서 밭갈이를 해놨던 300여㎡는 그대로 놀렸다.

담 아래에는 손질까지 마친 배추 500여포기가 비닐에 쌓인 채 놓여있었다.

일주일 안에 팔리지 않으면 썩게 돼 결국 헛고생만 하게 된다.

한씨는 "그래도 여름 내내 땀 흘려 농사지은 건데 차마 그냥 밭에 버려둘 수가 없어 일단 수확을 해놨다.

하지만 예상대로 아무도 쳐다보질 않는다.

진짜로 눈물이 날 지경이다"며 눈가를 훔쳤다.

최재철 장점마을 주민대책위원장은 "농작물 팔아서 빚도 갚고 아이들도 가르쳐야 하는데 하나도 팔리지 않으니 살 수가 없다.

암으로 고통받은 주민들이 이제는 농작물 판로가 없어 굶어 죽을 판"이라고 토로했다.

최 위원장은 "정부가 잘못을 인정했으니 최소한의 책임을 져야 하지 않느냐"며 "장점마을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전량 수매해 살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