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중재학회(회장 김용길 원광대 로스쿨 교수·사진)는 오는 6일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 대한상사중재원 중재교육원에서 ‘남북한 간 교역시 분쟁의 효율적 해결을 위한 중재제도 정립방안’이라는 주제로 동계 국제학술대회를 연다. 김광길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오일환 중국정법대 교수, 황보현 변호사(회계사), 이양 중국 서남정법대 교수 등이 발표한다.
지난해 말 체코 프라하에서 국제중재의 비효율성을 성토하는 중재인들의 회의가 열렸다. 법원 재판보다 시간과 돈을 절약할 수 있다는 중재의 장점이 퇴색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분쟁 당사자들에게 광범위한 문서를 요구하고 복잡한 절차를 지키도록 강제하는 탓에 변호사 좋은 일만 한다는 얘기였다.“지금 중재는 변호사들만 좋은 일”대한상사중재원 국제중재센터와 법무부가 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 등과 함께 지난 17일부터 닷새 일정으로 개최한 서울 국제중재 페스티벌에서도 국제중재 과정의 군더더기를 제거해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홍석환 한국조선해양 수석변호사는 “수십억달러 규모의 건설 관련 중재 사건에 참여했을 때 엔지니어와 변호사들이 7개월을 매달려 문서 준비 작업을 했다”며 “국제중재 비용과 시간의 70~80%가 서류 작성에 드는데, 이를 해소하지 못한다면 기업들이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홍 변호사뿐만 아니다. 지난해 영국 런던퀸메리대가 국제중재 경험이 있는 1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67%는 중재의 문제점을 비용에서 찾았다. 사건 처리 기간이 늦어진다는 반응도 34%로 나타났다.정교화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대표변호사는 “신청인과 피신청인이 서로 각종 문서를 제출하기에 앞서 판정부와 합의해 어떤 서류로 다퉈야 할지 제대로 조율한다면 쓸데없는 준비로 공력을 낭비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했다. 김갑유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대한상사중재원이 1년 반 정도면 국제중재 사건을 마무리하는 비결은 사전에 판정부와 당사자들이 모여 사건의 쟁점과 절차를 논의하는 시간을 갖기 때문”이라며 “이런 과정을 거치면 본격적인 심리에 들어갔을 때 불필요한 증인 신문을 줄이고 핵심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중재 판정문 공개를 활성화해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컸다. 더그 존스 전 공인중재인협회장은 “판정문을 누구나 볼 수 있게 되면 다른 사건 관계자들에게 좋은 참고자료가 된다”며 “중재인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사건을 빨리 처리하도록 하는 데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국제상업회의소(ICC) 국제중재법원을 비롯해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 대한상사중재원 등은 기업인들의 기밀보호를 중시한다면서도 부분적으로나마 판정을 공개하기 시작하면서 기업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분위기다.사내 변호사 더 깊숙이 개입해야지난해 말 등장한 프라하 규칙은 중재 판정부의 개입을 보다 적극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중요하지 않은 쟁점에서 소모적 논쟁이 벌어지거나 불필요한 ‘문서 요청 전쟁’이 생겼을 때 과감하게 정리해줘야 한다는 취지다. 임수현 대한상사중재원 국제중재센터 사무총장은 “중재업계 전반에서 판정부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제언이 많다”며 “판정부가 쟁점을 명확히 파악해서 확실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 분쟁 당사자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고 사건 처리도 훨씬 효율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국제중재 비용 절감과 관련해서는 기업 사내변호사들의 역할도 강조됐다. 40년 넘게 중재인으로 활동해 온 레스터 슈펠바인 실리콘밸리 중재센터 대표는 “초반부터 사내 법무팀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최고재무책임자(CFO), 최고경영자(CEO) 등 의사결정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면 과정과 결과 모두에서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서울국제중재페스티벌에는 전 세계 중재인을 비롯해 국내외 로펌 관계자, 사내변호사, 학계 인사 등 약 800명의 관계자가 참가했다. 한국경제신문사가 미디어 파트너를 맡았다.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작년까지 중재 접수 건수는 매년 300여 건 수준인데 제 임기가 끝나는 2년 뒤 500건을 넘길 수 있도록 중재의 장점을 널리 알려보겠습니다.”취임 1주년을 맞는 이호원 대한상사중재원 원장(사법연수원 17기·사진)은 1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올 들어 지난 8일까지 283건의 중재신청이 들어왔는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 늘었다”며 “중재의 장점을 제대로 알리고 인프라 구축에 매진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중재원에 따르면 8일 현재 전체 중재신청금액도 전년 동기 대비 80% 이상 증가했다.중재는 민간에서 활동하는 중재인이 판사 역할을 맡아 1심만으로 분쟁의 결론을 내준다. 중재 결정은 법적 구속력이 있기 때문에 ‘사설 법원’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이 원장은 서울대 대학원 시절부터 중재에 관심을 가져왔으며, 미국 조지타운대 법학 석사 과정을 밟으며 국제중재에도 눈을 떴다. 서울가정법원장으로 법복을 벗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활동하다 지난해 8월 원장으로 취임했다.이 원장은 중재의 장점을 신속성에서 찾았다. 그는 “중재 사건 중에는 건설업과 엔터테인먼트 분야가 많은데 이들의 특징이 아무리 좋은 결론이 나더라도 시간이 지체되면 의미가 없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사 기한을 넘기거나 연예인의 인기가 식어버린 다음 잘못이 드러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얘기다. 공개재판을 원칙으로 하는 법원과 달리 중재를 통하면 비밀리에 분쟁을 매듭짓는다. 이 원장은 “전국에 법관이 3000명을 밑도는데 한 해 사건이 100만 건을 웃돈다”며 “반면 중재는 전문가들이 소수의 사건을 꼼꼼히 검토하면서 반년 정도면 결론을 내준다”고 강조했다. 중재 비용은 정부 지원을 통해 최저 55만원으로 치를 수도 있고, 최대 한도는 1억5000만원이다.요즘 이 원장은 중재사건의 ‘씨앗’을 뿌려놓는 데 매진하고 있다. 그는 “분쟁이 생겼을 때 어디서 해결을 보는 게 가장 좋을까 고민해 중재원을 찾아오는 신청인만 있다면 ‘천수답 경영’을 벗어나지 못한다”며 “기업이 계약서를 쓸 때 대한상사중재원에서 중재한다고 명시하도록 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이 원장은 “다음달 22일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변호사협회 연차총회에 세계 6000여 명의 변호사가 몰려드는데 한국의 중재산업을 알리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라며 “해마다 11월께 개최하던 서울국제중재페스티벌(SAF)을 IBA 서울 총회 바로 전에 열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 기업과 해외 기업 간 다툼에서 스스로 합의(조정)했을 때 강제성을 부과하는 싱가포르협정이 최근 통과됐다”며 “조정산업을 두고 홍콩 싱가포르와의 각축전이 불가피한 만큼 정부와 유기적인 협조로 대응책을 강구하겠다”고 덧붙였다.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
대한상사중재원이 다음달 17일부터 5일간 서울 삼성동 트레이드타워와 코엑스 등에서 ‘2019 서울국제중재페스티벌(SAF)’을 연다. 이번 행사에서는 분쟁해결 절차의 최근 트렌드를 짚어보고 적법성을 확보하면서도 효율성을 높여주는 개혁 방안을 찾아본다. 외국 회사와의 분쟁을 조정으로 해결했을 때 법적 강제력을 부여하는 싱가포르협정 체결에 대한 평가도 이뤄진다. SAF는 2015년 처음 열린 이후 세계 국제중재 전문가와 중재기관 관계자들이 국제분쟁 해결에 관한 트렌드와 이슈를 짚어보는 글로벌 이벤트로 자리잡았다. 참가 신청은 SAF 공식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다.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