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민연금 경영참여 지침' 재검토해야
지난 13일 국민연금이 경영참여를 본격화하는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공개했다. 국민연금이 정한 네 가지 중점관리 사안에 대해 기업에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관철되지 않을 경우 주주제안을 하겠다는 것이다. 민간기업을 마치 국고 지원을 받은 기업처럼 정부가 일정한 지침을 주고, 지침 여부가 준수되는지를 관찰한 뒤, 마음에 안 들면 제재를 가하겠다는 가이드라인처럼 보인다.

국고 지원을 받거나 정부로부터 혜택을 받은 민간기업이라면 국민의 혈세를 기반으로 사업을 하기 때문에 정부기관의 관리·감독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스스로 자금을 조달하고 시장을 개척해 경영을 하는 민간기업에까지 정부가 나서서 경영을 통제 내지 관리하겠다는 것은 연금사회주의를 본격화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선진 각국은 연기금이 투자수익 확보를 위해 민간기업에 투자하는 경우 투자만 하고 경영참여는 못 하도록 제도화해 연금사회주의에 대한 우려를 차단하고 있다. 물론 국민연금의 투자를 원하는 기업도 있을 수 있다. 이런 민간기업에 대해서는 국민연금의 통제와 관리를 받겠다는 계약을 하고 가이드라인에 따라 정부가 관리·감독을 하면 된다.

이런 가이드라인은 연성규범이기 때문에 정부가 해당 민간기업을 통제·관리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의 장(長)이 대통령이 임명한 보건복지부 장관임을 고려할 때 이를 연성규범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번 가이드라인의 내용도 문제다. 국민연금이 제시한 네 가지 중점관리사안 중 ‘배당정책’, ‘임원 보수한도’, ‘이사·감사위원 선임’은 ‘사영기업의 경영’에 해당하는 것으로 헌법 제126조에서 국가 개입을 금지한 사안이다. 즉, 위헌의 소지가 있는 것이다.

‘횡령·배임·경영진의 사익편취 등 법위반’ 사안 역시 다른 주주들과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크다. 상법상 총주주가 동의하면 경영진의 법 위반에 대해 민사책임을 면해줄 수도 있는 전형적인 경영 판단의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임원에게 과도한 형사책임을 부과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형사법제도 문제다. 우리나라에는 직원의 행위에 대해 기업 대표자가 함께 형사책임을 져야 하는 양벌규정이 수백 개에 달한다. 기업의 임원에게는 기업범죄라는 이름으로 추상적 위험범의 법리를 적용해 명백한 증거 없이도 처벌하거나 금액에 따라 가중처벌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국민연금이 경영참여를 하는 절차 역시 문제다. 가이드라인에서는 중점관리 사안에 문제가 발생하면 비공개 대화를 하도록 돼 있는데, 이는 사실상 행정지도와 비슷하다. 우리 행정절차법은 행정지도 시 반드시 서면으로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개적으로 행정지도를 하라는 것이다. 이는 국민연금도 문제 발생 시 비공개가 아니라 서면을 통해 공개적으로 대화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점관리기업임을 공개하는 것 역시 문제다. 자칫하면 정치적 목적에 의한 ‘마녀사냥’의 도구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봐도 국민연금이 마련한 이번 가이드라인은 재검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