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유럽연합(EU)이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최종 시한을 2주 앞두고 합의안 도출에 성공했다. 글로벌 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미칠 수 있는 ‘노딜 브렉시트(아무런 합의 없는 영국의 EU 탈퇴)’ 사태에 대한 우려를 덜게 됐다. 다만 영국과 EU가 합의해도 영국 하원의 동의를 얻어야 해 변수는 남아 있다.

‘백스톱’ 삭제된 새 합의

영국과 EU는 17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EU 정상회의 개최를 4시간가량 앞두고 새 합의안 초안에 극적으로 합의했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는 합의를 이뤄냈다”며 “이번 합의는 어떤 종류의 연장도 필요없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EU와 영국 양측에 매우 좋은 합의”라며 “영국은 예정대로 오는 31일 EU를 떠날 것”이라고 했다.
"노딜 브렉시트 파국 막자" 타협했지만…英하원 통과 장담 못해
이번 합의는 지난해 11월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와 EU가 첫 브렉시트 합의안에 서명한 지 11개월 만에 이뤄졌다. 당시 메이 총리와 EU는 브렉시트 후 영국령인 북아일랜드와 EU 회원국인 아일랜드 사이에 물리적 국경이 생기지 않도록 안전장치(백스톱)를 두고 북아일랜드를 비롯한 영국 전체가 EU 관세 동맹에 잔류하는 내용의 협정을 맺었다. 지난 7월 취임한 존슨 총리는 영국의 경제주권을 침해할 수 있는 백스톱을 폐기하고 EU와 새 협상안을 체결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EU와의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오는 31일까지 EU를 떠나겠다는 입장도 굽히지 않았다.

당초 EU는 ‘재협상은 없다’는 뜻을 고수해 왔다. 하지만 영국과 EU 경제 모두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는 노딜 브렉시트라는 파국을 막기 위해 새 협상안에 서명했다는 게 유럽 현지 언론들의 분석이다.

새 합의안엔 영국의 강력한 요구로 백스톱 조항이 삭제됐다. 대신 브렉시트로 인해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간 발생할 수 있는 엄격한 통행·통관 절차인 ‘하드보더’를 최소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영국 전체가 EU 관세동맹에서 빠져나오는 대신 북아일랜드를 2025년까지 사실상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 남겨두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새 합의안은 영국과 EU 양측의 비준을 모두 거쳐야 한다. EU는 17~18일 열리는 EU 정상회의에서 회원국 정상의 추인을 받을 계획이다. 영국은 19일 하원에서 새 합의안을 표결에 부쳐 과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양측 비준을 모두 거치면 영국은 당초 예정대로 31일 오후 11시(현지시간) EU를 영구 탈퇴하게 된다. 2016년 6월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를 결정한 지 3년4개월 만이다.

네 번째 하원 부결도 우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존슨 총리가 연립여당을 구성하고 있는 북아일랜드 민주연합당(DUP)을 설득할 수 있을지가 브렉시트의 최종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강경 브렉시트’ 성향의 DUP가 새 합의안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DUP와 북아일랜드 자치정부는 영국 본토와 마찬가지로 EU 관세동맹과 단일시장에서 일제히 탈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존슨 총리는 DUP와 자치정부를 설득하기 위해 대규모 현금 지원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해 11월 영국과 EU가 맺은 기존 브렉시트 합의안은 영국 하원에서 세 차례 부결됐다. 제1야당인 노동당뿐 아니라 브렉시트 강경파들이 거세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존슨 총리는 DUP와 야당을 설득해 31일까지 브렉시트를 강행한다는 계획이다.

영국 하원의원은 650명이다. 의장단(4명)과 북아일랜드 신페인당 의원(7명) 등 표결권이 없는 의원을 제외한 639명의 과반은 320명이다. 이 중 보수당 의석은 288석으로,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북아일랜드 정당인 DUP(10석)를 합쳐도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새 브렉시트 합의안이 19일 하원을 통과하지 못하면 영국 정부는 EU에 내년 1월 말까지 브렉시트 시한을 3개월 연장해 달라는 서한을 보내야 한다. 지난달 초 영국 하원에서 제1야당인 노동당 주도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노딜 브렉시트 방지법’이 통과됐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