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민욱 기획·국내외 청년작가 13팀 참여한 '끝없는 여지'展
남영동 대공분실 그림자 걷어내려는 젊은 몸짓들
지하철 1호선 남영역 지척에는 7층짜리 검은색 벽돌 건물이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해 1976년 완공된 건물은 반세기 세월에도 반듯한 모습이다.

치안본부(현 경찰청) 산하 대공 수사기관으로 한때 '남영동 대공분실'로 불린 이곳에서 박종철을 비롯해 1970∼80년대 수많은 민주인사와 대학생이 인권을 유린당했다.

건물은 지난해 12월부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운영하는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쓰이지만, 이곳에 드리운 그림자는 길고도 짙다.

8일 오후 이 '남영동 대공분실' 본관 앞에 젊은 미술가들이 모여들었다.

강라겸, 강은교, 강은구, 김예슬, 배선영, 배한솔, 엄지은, 이유지아, 이이난, 정명우, 정민지, 주혜영, 오카모토 하고로모 등 13팀은 총괄 기획을 맡은 중견 미술가 임민욱과 함께 전시 '끝없는 여지'(Endless Void)를 펼쳤다.

강은구 작가는 본관 1∼5층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건물 바깥 사다리차를 탄 관람객이 스캔하듯 올라가며 관람하는 '내일의 연대기'를 선보였다.

김예슬 '분실'은 5층에 위치한 각각 분실에 수도 호스를 연결하여 좁다란 창 너머로 물을 흘려 내보내는 작업이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위해 급속한 산업화와 함께 진행된 상수도 보급이 인권을 박탈하는 형태로도 이뤄졌음을 말한다.

오카모토 하고로모는 남영동이란 공간의 서늘한 온도, 그곳에 스민 폭력과 공포를 작가 몸으로 표현하는 퍼포먼스 '목소리와 온도'를 준비했다.

18일까지 무료로 열리는 전시에서는 이밖에 다양한 영상과 설치, 퍼포먼스 작업을 감상할 수 있다.

임 작가는 "여기서 벌어진 일들이 과거의 것, 타인의 고통, 당사자들만의 문제라며 근엄하게 선을 긋는 이들을 향해, 청년작가들은 그것은 상상할 수 있는 일, 사람이 저지른 일, 당사자가 아닌 타인이 기억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고 설명했다.

임 작가는 그러면서 "내일의 민주인권기념관이 다시 태어나 할 일은 역사적 비극의 장소로서 눈물에 호소하는 일이 아니라, 근대가 실패하는 일이 기억의 박제화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젊은 예술가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이 공간을 기억하고 표현하는 것을 이번 전시를 통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