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포괄적 합의-北 단계적 합의 사이 접점 도출할 '유연성' 관건
처음 만나는 김명길-비건…3차 정상회담행 다리 놓을지 관심
7개월만에 대좌 北美, 비핵화-상응조치 '새로운 방법' 찾을까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등을 돌렸다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다시 만난 북한과 미국이 비핵화와 상응조치의 첫 단추를 꿰어 낼지 관심을 모은다.

7개월의 비핵화 협상 공백을 메우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아 보이는 가운데 양측이 어느 정도로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와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이끄는 북미 실무협상팀은 5일(현지시간) 오전부터 스톡홀름 외곽 리딩외에 위치한 '빌라 엘비크 스트란드'에서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협상을 한다.

4일 차석대표간 예비접촉에서 의제와 관련된 논의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비건 대표와 북한의 새 협상 수석대표인 김명길 대사는 여유있게 상견례를 하고 친교를 다질 시간도 없이, 치열한 협상에 돌입하게 됐다.

'하노이 회담'에서 비핵화에 접근하는 방식을 두고 인식 차이를 드러낸 북한과 미국이 우여곡절 끝에 얼굴을 다시 마주하면서 이 간극을 좁힐 묘안을 가져왔느냐에 따라 이번 협상의 성패가 가늠될 것으로 관측된다.

하노이에서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와 주요 제재 해제의 맞교환을 출발점으로 삼아 점진적으로 비핵화를 이루겠다는 '단계적 합의-단계적 이행'을, 미국은 비핵화의 최종상태를 정의하고 로드맵을 마련하는 '포괄적 합의'를 주장하다 접점을 찾지 못했고 결국 회담은 결렬됐다.

그때나 지금이나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은 듯하다.

미국은 여전히 비핵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하고 로드맵을 그려야 한다는 입장은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윤제 주미대사는 4일 워싱턴DC 주미대사관에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하노이 회담 이후 미국 측 입장이 좀 더 동시적·단계적 상응조치 쪽으로 진전된 것으로 볼 수 있느냐는 질의에 "미국 측에서는 기본적인 입장은 지난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에 큰 변화가 없다"고 평가했다.

북한 역시 '단계적 합의-단계적 이행'을 고수하는 모양새다.

김명길 대사는 지난달 20일 발표한 담화에서 "조미(북미) 쌍방이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으며 실현 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단계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김 대사의 담화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8일(현지시간)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주장하던 '선(先) 핵 폐기-후(後) 보상'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어쩌면 새로운 방법이 매우 좋을지도 모른다"고 발언한 데 대한 화답 차원에서 나왔다.

결국 이번 실무협상의 성패는 양측이 기존 입장에서 얼마나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전체 비핵화의 설계도를 먼저 그린 뒤 단계적으로 이행해 나가려는 미국과, 이행 가능한 것부터 합의해서 이행함으로써 부족한 신뢰를 적립해 나가길 바라는 북한이 접점을 찾으려면 상호 유연성 발휘가 불가피해 보인다.

김명길 대사가 스톡홀름으로 향하기 전 베이징 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미국 측에서 새로운 신호가 있었다"고 밝힌 점으로 미뤄봤을 때 미국 측에서 보다 유연한 접근을 사전 조율 과정에서 시사했을 개연성도 거론된 바 있다.

조윤제 주미대사도 국감에서 미국이 "훨씬 유연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결국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 최종단계 설정, 로드맵 합의 등 요구를 수용한다면 북한이 바라는 여러 상응 조치를 유연하게 제시할 수 있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미국 언론은 영변 안팎에서의 핵물질 생산을 전면 중단토록 하는 '핵동결'과 일부 제재의 '유예'를 맞바꾸는 교환구도를 이번 협상에서 타결 가능한 합의 수준으로 거론하고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 4일 미국이 이번 실무협상에 앞서 북한이 영변에 있는 주요 핵시설을 해체하고 고농축 우라늄 생산 중단에 합의한다면 섬유·석탄 수출 제재를 3년간 유예하는 방안을 준비해왔다고 보도한 바 있다.

미국 인터넷 매체 복스도 지난 2일 미국이 이번 북미 실무협상을 앞두고 '영변+α'를 대가로 북한의 핵심 수출품목인 석탄·섬유 수출 제재를 36개월간 보류하는 방안을 마련했다고 비슷한 기류를 보도했다.

그러나 이런 보도가 미국 협상팀의 정확한 기조를 반영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핵화 최종 목표와 같은 '큰 그림'에 대한 합의없이 핵동결을 전제로 제재 유예와 같은 경제적 보상을 할 경우 가뜩이나 탄핵 조사로 코너에 몰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입지가 더 어렵게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이번 협상과 제3차 북미정상회담의 관계를 둘러싼 양측의 온도차를 어떻게 극복하지도 관심을 모은다.

북한은 이번 협상을 정상회담으로 가는 과정의 하나로 간주하는 반면 미국은 실무협상에서 손에 잡히는 합의를 하는 것을 전제로 정상회담 개최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외교가의 대체적인 평가다.

결국 '비핵화 최종단계', '영변 외 핵시설' 등과 같은 민감한 문제에까지 양측 실무협상 대표 차원에서 합의할 수 있을지 여부가 관심을 모은다.

실무진 차원에서 이견이 있을 경우 북한은 정상간의 최종담판으로 넘기려 하고, 미국은 또 한번의 '노딜 정상회담' 리스크를 최대한 피하기 위해 지속 협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일단 5일 하루로 예정한 회담이 연장될지 여부도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