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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풍에 '쑥대밭' 영덕·울진 등 경북 동해안 응급복구 총력전(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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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택 10채 파손·807채 침수, 농작물 1천238㏊ 피해
    공무원·군인 등 가용 인력 총동원…특별재난지역 선포 건의
    태풍에 '쑥대밭' 영덕·울진 등 경북 동해안 응급복구 총력전(종합)
    제18호 태풍 '미탁'으로 쑥대밭이 된 영덕, 울진 등 경북 동해안 지역에 공무원과 군인, 봉사단체 등이 대거 투입돼 응급 복구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4일 경북도에 따르면 태풍으로 큰 피해가 난 울진, 영덕, 포항 등에서 이날 공무원 1천600여명과 군인 660여명, 봉사단체 회원 800여명이 쓰레기 더미 등을 치우고 있다.

    매몰되거나 파손된 주택에 인력과 장비를 집중적으로 배치해 흙더미와 부서진 잔해를 걷어내고 침수 피해를 본 주택 청소에도 안간힘을 쏟고 있다.

    영덕에는 남정, 달산, 지품, 축산, 영해, 병곡, 창수 등 피해가 큰 지역에 굴삭기 104대와 덤프트럭 33대를 투입했다.

    울진 평해, 근남, 매화 기성, 온정, 죽변, 후포 등에도 장비 150여대와 인력을 총동원해 주택과 마을 안길 등에 쌓인 토사와 돌, 파손된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있다.

    공무원, 자원봉사자 등은 피해 주민과 함께 엄청나게 밀려든 토사와 폐허가 된 곳곳을 치우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지만 피해 지역이 넓고 규모가 워낙 커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역부족이다.

    많은 비로 유실된 도로와 하천, 산사태 지역에는 굴삭기 등을 투입해 안전조치와 응급복구를 하고 있다.

    하지만 곳곳이 초토화돼 아직 응급복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도 많은 실정이다.

    영덕과 울진에는 통합자원봉사지원단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으며 응급구호 세트와 생필품, 모포. 이동세탁 차량, 급식 차량 등을 지원했다.

    행정당국은 피해 주택과 시설물 응급복구에 집중하고 침수되거나 쓰러진 벼는 물이 빠진 뒤 조기에 수확하도록 해 매입을 추진할 예정이다.

    낙과 피해 과일은 가공용 수매, 친환경 액비 제조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또 농작물 보험 가입에 가입한 경우는 적법절차를 거쳐 보험료 50%를 선지급할 방침이다.

    태풍 피해자 조기 생활 안정을 위해서는 재난지원금 50억원을 우선 시·군에 지원하고 피해조사도 신속히 진행하기로 했다.

    태풍에 '쑥대밭' 영덕·울진 등 경북 동해안 응급복구 총력전(종합)
    경북에서는 이번 태풍으로 사망 6명, 실종 2명, 부상 3명의 인명피해가 났으며 5개 시·군 1천709가구 2천277명이 일시 대피했다가 귀가했다.

    영덕 등 동해안 3개 시·군의 주택 10채가 부서지고 807채가 물에 잠겼다.

    침수 주택은 물이 모두 빠진 상태다.

    포항 등 18개 시·군의 농작물 1천238.7㏊에서 피해가 났으며 이 가운데 영덕이 538.2㏊로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울진은 138.9㏊에 이른다.

    울진 4곳에서는 양식 어류 46만마리도 폐사했다.

    공공시설은 도로 68곳, 하천 29곳이 유실됐고 38곳에서 크고 작은 산사태가 발생했다.

    경북도는 앞으로 시설물과 농작물 피해 규모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본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이날 국무총리 주재 영상 회의에서 특별 교부세 50억원 지원과 영덕, 울진에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건의했다.

    경북도 관계자는 "피해가 큰 지역을 중심으로 인력과 장비를 우선 투입하고 있다"며 "앞으로 유관기관, 자원봉사자 등을 추가로 동원해 응급복구를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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