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한반도 비무장지대(DMZ)에 국제평화지대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남북한 군사적 대결이 낳은 비극적 공간인 DMZ를 군사적 충돌이 영원히 불가능한 지역으로 만들어 평화를 확산시키자는 구상이다. 구체적으로는 DMZ 전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유엔기구 및 평화·생태·문화기구를 DMZ 내에 유치하며, DMZ 내 지뢰를 전면 제거하자는 등의 내용을 제안에 담았다.

DMZ 국제평화지대 구상이 이번에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지난해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판문점 선언에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가기로 했다”는 내용이 담겼고 지난해 9·19 남북 군사합의 이후 DMZ 내에서 지뢰 제거 작업이 진행되기도 했다. 취지대로만 이행된다면 한반도 평화 정착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문제는 지금이 DMZ 평화지대 구상을 제안할 시점이냐는 것이다. 북한은 올 들어 열 차례나 미사일과 신형 방사포 등 단거리 발사체 도발을 이어가고 있다. 사(射)거리를 감안하면 대한민국 전역이 북한의 직접 공격에 노출된 셈이다. 이렇게 위중한 안보 현실을 외면한 채 평화지대 구상을 거론하는 것은 지나치게 앞서나가는 것일 뿐 아니라, 공허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연설 중 미사일 얘기는 쏙 빼고 “북한은 작년 9·19 군사합의 이후 단 한 건의 위반이 없었다”고 말했다. 미사일이 직접 한국을 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합의 위반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미사일 도발은 누가 봐도 한국을 겁박하려는 적대행위다.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 전면 중지’를 규정한 9·19 군사합의 제1조 위반이다. 설사 군사합의 위반이 아니더라도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명백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사항 위반이다.

북한에 나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적절했다고 보기 어렵다. 아무리 도발하고 막말을 퍼부어도 한국 정부는 북한을 두둔할 것이라는 잘못된 신호 말이다. DMZ 평화지대 구상은 북한 비핵화가 이뤄지면 자연스럽게 실현될 수 있다. 지금 서두르는 것은 성급할 뿐 아니라 실현 가능하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