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 '국치의 길'· '경제침탈의 길' 걸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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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관광재단 '서울 다크 투어' 소개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이어지면서 한일 역사에 대한 관심도 뜨거워지고 있다.
서울관광재단은 광복절(8·15)과 경술국치일(8·29)을 맞아 '서울 다크 투어'라는 이름으로 슬프고 암울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역사를 간직한 장소를 17일 소개했다.
◇ 남산 '국치의 길'
서울 남산은 아름다운 자연을 선사하는 곳이지만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남산 국치의 길은 그 흔적을 따라 당시 아픔을 기억하고 보존하기 위해 조성된 길이다.
강화도조약 이후 서울에 들어온 일본인들은 남산 아래 충무로 일대에 모여 살면서 영역을 넓혀갔다.
이후 일제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남산 자락에 조선을 통치하기 위한 여러 시설이 들어섰다.
길은 '한국통감관저 터'에서 시작한다.
1910년 8월 22일 데라우치 통감과 총리대신 이완용이 이곳에서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했고, 8월 29일 조칙이 시행되면서 조선은 일제의 식민지가 됐다.
현재 통감관저 터에는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기 위한 '기억의 터'가 조성됐다.
기억의 터를 나와 남산 자락을 따라가면 만나는 리라학교 내 남산원에는 노기신사 터가, 숭의여대 교내에는 경성신사 터가 남아있다.
일본 침략전쟁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공간들이다.
남산 케이블카 탑승장에서 위로 올라가면 한양공원 비석이 나타난다.
한양공원은 1910년 일본인들을 위해 세워진 공원이다.
후에 조선신궁이 건립된 자리다.
조선신궁은 해방 이후 철거됐고 시민들을 위한 남산공원이 조성됐다.
◇ '경제 침탈의 길'
종로 보신각 남쪽 광교를 시작으로 숭례문을 지나 서울역까지 이르는 구간은 일제강점기 조선은행을 비롯해 수많은 은행이 밀집했던 금융 지역이다.
현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자리에는 조선은행, 맞은편 현 신세계백화점 옆 건물에는 조선저축은행이 있었다.
신한은행 광교 영업부 자리에는 한성은행, 광교약국 자리에는 민족계 은행인 동일은행 등도 있었다.
한반도를 효율적으로 수탈하기 위해 세워진 동양척식주식회사는 현재의 KEB하나은행 명동 사옥에 있었다.
그 앞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투척한 나석주 의사의 동상이 서 있다.
명동성당도 다크 투어와 연관이 있다.
명동성당 추도식에 참석하고 나오는 친일파 이완용을 군밤 장수로 변장해 기다리던 이재명 의사가 칼로 공격했다.
이완용은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이재명 의사는 일본 경찰에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고 이듬해 순국했다.
◇ '고종의 길'
명성황후 시해 후 고종은 경복궁을 빠져나와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했다.
이른바 '아관파천'이다.
고종은 궁녀가 타던 가마에 몸을 싣고 도망쳐야 했다.
당시 길 중 덕수궁 서북쪽 구세군 서울제일교회앞 돌담길에서 정동공원과 러시아 공사관까지 이어지는 120m가 복원됐다.
러시아 공사관에서 내려와 정동길을 따라 걷다 보면 덕수궁 중명전이 나온다.
이토 히로부미가 군사를 이끌고 궁궐을 넘나들며 3일간 고종과 대신들을 압박한 끝에 중명전에서 강제로 을사늑약이 체결됐다.
중명전을 나와 정동길을 걸으며 정동교회, 배재학당, 이화학당을 둘러볼 수 있다.
덕수궁 건너편 조선호텔 앞에 있는 환구단은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하면서 제를 올린 곳이다.
/연합뉴스

서울관광재단은 광복절(8·15)과 경술국치일(8·29)을 맞아 '서울 다크 투어'라는 이름으로 슬프고 암울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역사를 간직한 장소를 17일 소개했다.

서울 남산은 아름다운 자연을 선사하는 곳이지만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남산 국치의 길은 그 흔적을 따라 당시 아픔을 기억하고 보존하기 위해 조성된 길이다.
강화도조약 이후 서울에 들어온 일본인들은 남산 아래 충무로 일대에 모여 살면서 영역을 넓혀갔다.
이후 일제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남산 자락에 조선을 통치하기 위한 여러 시설이 들어섰다.
길은 '한국통감관저 터'에서 시작한다.
1910년 8월 22일 데라우치 통감과 총리대신 이완용이 이곳에서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했고, 8월 29일 조칙이 시행되면서 조선은 일제의 식민지가 됐다.
현재 통감관저 터에는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기 위한 '기억의 터'가 조성됐다.
기억의 터를 나와 남산 자락을 따라가면 만나는 리라학교 내 남산원에는 노기신사 터가, 숭의여대 교내에는 경성신사 터가 남아있다.
일본 침략전쟁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공간들이다.
남산 케이블카 탑승장에서 위로 올라가면 한양공원 비석이 나타난다.
한양공원은 1910년 일본인들을 위해 세워진 공원이다.
후에 조선신궁이 건립된 자리다.
조선신궁은 해방 이후 철거됐고 시민들을 위한 남산공원이 조성됐다.

종로 보신각 남쪽 광교를 시작으로 숭례문을 지나 서울역까지 이르는 구간은 일제강점기 조선은행을 비롯해 수많은 은행이 밀집했던 금융 지역이다.
현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자리에는 조선은행, 맞은편 현 신세계백화점 옆 건물에는 조선저축은행이 있었다.
신한은행 광교 영업부 자리에는 한성은행, 광교약국 자리에는 민족계 은행인 동일은행 등도 있었다.
한반도를 효율적으로 수탈하기 위해 세워진 동양척식주식회사는 현재의 KEB하나은행 명동 사옥에 있었다.
그 앞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투척한 나석주 의사의 동상이 서 있다.
명동성당도 다크 투어와 연관이 있다.
명동성당 추도식에 참석하고 나오는 친일파 이완용을 군밤 장수로 변장해 기다리던 이재명 의사가 칼로 공격했다.
이완용은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이재명 의사는 일본 경찰에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고 이듬해 순국했다.

명성황후 시해 후 고종은 경복궁을 빠져나와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했다.
이른바 '아관파천'이다.
고종은 궁녀가 타던 가마에 몸을 싣고 도망쳐야 했다.
당시 길 중 덕수궁 서북쪽 구세군 서울제일교회앞 돌담길에서 정동공원과 러시아 공사관까지 이어지는 120m가 복원됐다.
러시아 공사관에서 내려와 정동길을 따라 걷다 보면 덕수궁 중명전이 나온다.
이토 히로부미가 군사를 이끌고 궁궐을 넘나들며 3일간 고종과 대신들을 압박한 끝에 중명전에서 강제로 을사늑약이 체결됐다.
중명전을 나와 정동길을 걸으며 정동교회, 배재학당, 이화학당을 둘러볼 수 있다.
덕수궁 건너편 조선호텔 앞에 있는 환구단은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하면서 제를 올린 곳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