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아 꿈꾼 70대 화가의 열정…인도네시아서 '수채화 한류' 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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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人스토리 - 한국 수채화 대가 정우범 화백
자카르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내년 1~2월에 대규모 회고전
자카르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내년 1~2월에 대규모 회고전

미대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화가들을 따라가려면 하루에 10~15시간은 그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간과의 싸움을 벌였다. 공허함으로 가득찬 무(無)의 세상 속에서 생명력으로 반짝이는 유(有)를 갈망했던 그는 1990년대 초 태권도 박사 이기정 씨와의 인연으로 미국 올랜도시티갤러리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어 ‘수채화 한류’에 도전장을 냈다. 미국 워싱턴DC 미셸갤러리(1995년)를 비롯해 대만 쑨원미술관(2017년)과 중국 상하이 인근 우시 피닉스예술궁전미술관(2018년)에 잇달아 초대되며 국제 미술계의 찬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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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서울 연희동 작업실에서 만난 정 화백은 자카르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초대전을 여는 것에 대해 “복숭아꽃 향기가 세상을 가득 채우고, 꽃잎이 하늘하늘 바람에 날리는 무릉도원을 한국적 감수성으로 화폭에 수놓은 게 주목받은 것 같다”며 “미술 인생의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분기점”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정 화백은 지난 40년 동안 수채화 길을 우직하게 걸어왔다. 전통 수채화 기법을 고수한 그의 작품들은 50대 초반까지도 화단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2002년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수채화에 아크릴을 혼용한 꽃그림 ‘판타지아’ 시리즈를 내놓았다. 터키 수도 앙카라로 스케치 여행을 하며 케말 파샤 광장 주변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 천지를 화폭에 담았다. 국화를 비롯해 장미, 팬지, 양귀비, 피튜니아 등 형형색색 원색의 꽃들을 화면에 빼곡히 채운 ‘판타지아’는 수많은 미술 애호가를 열광시켰다. 최근에는 캔버스를 꽃밭으로만 채우면 지루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삼각형과 사각형 등 기하학적 요소나 글자 형태로 꾸민 ‘문자 판타지아’에 매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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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정 화백의 화법은 유별나고 독특하다. 프랑스산 고급 수채화용 종이인 아르슈지에 물을 적신 뒤 유화 붓을 짧게 잘라 만든 붓 끝에 안료를 발라 종이에 두드리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스프레이로 물을 뿌려놓고 시간이 지나면 물감이 자연스럽게 번진다. 물과 물감, 종이가 서로의 영역을 침투하고 침투당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색채끼리 저절로 만나 어우러지면서 마치 꿈속 장면인 듯 아련하면서도 오묘한 아름다움을 품은 화폭이 탄생하게 된다.
정 화백은 작품 제작 방식에 대해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끝없는 반복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물감을 캔버스에 칠하는(+) 것 외에도 미처 캔버스에 스며들지 못한 물감 위에 화장지를 얹거나 스프레이로 물을 뿌려 물감을 더욱 묽게 하는 방식으로 물감을 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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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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