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 시위대가 12일 오후 홍콩국제공항을 점령해 여객기 운항이 전면 중단됐다. 시위로 인해 홍콩국제공항 운항이 중단되기는 95년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홍콩국제공항은 1924년 카이탁공항으로 시작했다가 1998년 첵랍콕공항으로 바뀌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명보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수천 명의 송환법 반대 시위대가 공항 터미널로 몰려들어 연좌시위를 벌이는 바람에 공항 출국 수속 등이 전면 중단됐다. 공항당국은 성명을 내고 “출발편 여객기의 체크인 서비스가 전면 중단됐다”며 “체크인 수속을 마친 출발편 여객기와 이미 홍콩으로 향하고 있는 도착편 여객기를 제외한 모든 여객기의 운항이 중단됐다”고 발표했다.

대한항공은 이날 오후 홍콩공항이 기능을 상실하기 전 KE602편이 홍콩공항을 무사히 이륙했지만, 이후 이날 출발할 예정이던 KE608편과 13일 출발 예정인 KE612편의 운항은 취소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날 오후 7시45분 인천에서 홍콩으로 가는 KE607편과 오후 9시15분 떠나는 KE611편도 결항시켰다. 아시아나항공은 이날 오후 7시50분 인천에서 출발하는 OZ745편과 13일 오전 5시10분 홍콩을 떠나는 OZ746편의 운항을 취소했다.

시위대가 도보 등으로 계속해서 홍콩국제공항으로 향하는 바람에 공항 인근의 도로 교통도 극심한 정체 상태에 빠졌다. 송환법 반대 시위대는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사흘 연속 홍콩국제공항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날 시위는 당초 예정에 없었지만, 전날 침사추이 지역의 송환법 반대 시위에서 한 여성 시위 참가자가 경찰이 쏜 ‘빈백건(bean bag gun)’에 맞아 오른쪽 눈이 실명 위기에 처한 것에 분노해서 벌어졌다. 빈백건은 알갱이가 든 주머니 탄으로 타박상을 입힐 수 있는 시위 진압 장비다.

전날 송환법 반대 시위대는 침사추이, 삼수이포, 콰이청, 코즈웨이베이 등 홍콩 전역에서 게릴라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지하철 역사 안에까지 최루탄을 쏘는 등 강경하게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최소 40명이 부상했다. 실명 위기에 처한 여성을 기리는 의미에서 헝겊으로 한쪽 눈을 가리고 나선 공항 시위대는 “홍콩 경찰은 인간성을 이미 상실했다. 홍콩인을 위해 거리로 나온 소녀가 시력을 잃다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일부 시위대는 ‘깡패 경찰아, 우리에게 눈을 돌려다오’라고 쓴 팻말을 들기도 했다. 또 일부는 전날 시위에서 경찰이 시위대를 마구 폭행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공항 터미널에서 방영했다.

홍콩국제공항은 13일 오전 6시부터 운항을 재개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홍콩국제공항은 이를 위해 각국 항공사와 협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홍콩에서 중국 본토 출신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시위대를 마구 폭행하는 ‘백색테러’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명보, 빈과일보 등에 따르면 전날 홍콩 노스포인트 지역에서는 붉은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무리 지어 다니면서 시위대를 폭행하는 일이 발생했다.

친중파 진영의 한 소식통은 “이들은 중국 본토 조직에서 온 사람으로 송환법 반대 시위대와 맞붙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들어 노스포인트 곳곳에서 붉은색 옷을 입은 사람이 눈에 띄었지만, 홍콩 경찰은 이들을 해산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명보는 지적했다.

중국 주요 매체는 시위대를 향해 마지노선을 넘지 말라고 경고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이날 논평에서 “시위대가 던진 화염병으로 홍콩 경찰이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며 시위대가 폭력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비난했다. 인민일보는 이어 “시위대의 폭력행위가 홍콩 시민의 일상생활을 훼손하고 있다”며 “한마음으로 시위대의 폭력행위를 척결하고 홍콩의 안정을 회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도 이날 홍콩 시위대의 화염병 투척 영상을 보도하며 홍콩 시위가 폭력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고 강조했다.

홍콩 바로 옆의 중국 도시 선전에 무장경찰의 장갑차와 물대포가 대규모로 집결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명보에 따르면 홍콩과 바다를 사이에 둔 선전시 선전만 일대에 지난 10일 무장경찰이 탄 장갑차와 물대포가 대규모로 집결하는 모습이 목격됐고, 이를 찍은 영상이 온라인에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이를 놓고 갈수록 격화하는 데다 반중국 정서마저 강하게 드러내는 홍콩의 송환법 반대 시위에 중국 중앙정부가 개입할 수 있다는 ‘경고’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