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전국 도축장을 대상으로 전기요금 할인특례 현황을 조사한 뒤 그동안 할인받은 10억원 이상을 환수하겠다고 통보했다. 애초 특례 적용 대상이 아닌 ‘육류 가공시설’이 포함됐다는 이유에서다. 저렴한 심야전력을 써온 법인·공장 60여 곳도 별도 조사한 뒤 수백만~수억원씩 추징했다. 최악의 재무 위기를 겪고 있는 한전이 ‘마른 수건 쥐어짜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전 "도축시설 할인 전기료 토해내라"
도축장 “2014년엔 적합시설 판정”

전국 도축시설이 사용하는 전력은 산업용 전기다. 산업용 요금은 지난해 ㎾h당 평균 106.46원으로 주택용(106.87원)과 비슷하다. 계약종별 전력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전이 도축시설에 대해 요금 할인에 나선 건 2015년부터다. 2014년 호주, 캐나다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으면서 축산업계 피해를 보전해준다는 취지로 여·야·정 간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농협중앙회 등 전국 도축장에서 발생하는 전기요금의 20%를 2024년까지 10년간 깎아주기로 했다. 각 도축장은 전기요금 할인액만큼 축산농가 도축 수수료를 낮췄다. 수수료 인하에 따라 축산농가가 받은 혜택이 지금까지 20억원을 넘는다는 게 한국축산물처리협회의 추산이다.

하지만 한전은 작년 말부터 “도축장 내 가공시설은 할인 대상이 아니다”며 특례지원 사업장에서 제외했다. 또 상법에 따라 과거 3년간 할인받은 전기요금을 반환해야 한다고 통보했다. 농협 고령공판장 등 7개 도축시설이 뱉어내야 할 전기요금은 총 12억7791만원이다. 한전 관계자는 “내부 감사에서 육류 포장 등의 가공시설에까지 전기요금을 깎아주는 건 규정 위반이란 지적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축산물처리협회는 “육류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도축과 가공시설을 같은 장소에 두는 경우가 많은 데다 두 시설을 떼어내기도 쉽지 않다”며 “한전 역시 2015년 특례할인 적용 직전 시행한 현장 실사에서 적합 시설로 판정했다”고 반박했다.

비상경영 한전 “남 봐줄 때 아니다”

한전은 2014년 말 현장 실사에서 각 도축장을 ‘특례할인 대상’이라고 확인했던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한전 관계자는 “당시 업무처리가 미진했던 부분이 있다”며 “억울하다면 소송을 통해 해결하면 될 일”이라고 했다.

도축업계는 한전의 이번 조치가 축산농가에 적지 않은 부담을 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축산물처리협회 관계자는 “여·야·정 합의에 따라 전기요금 할인액만큼 낮춘 도축 수수료를 정상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전은 심야 전력을 사용하는 기업체와 공장, 골프장 등을 대상으로 현장 조사를 벌여 설치기준 등에 맞지 않을 경우 할인받은 금액을 추징하는 작업도 벌여왔다. 심야 요금 기준을 놓고 각 기업체와 한전 간 갈등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비상경영에 나선 한전이 ‘수익 우선 전략’을 채택한 게 문제의 원인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한전은 작년 2080억원의 영업손실(연결재무제표 기준)을 기록한 데 이어 올 1분기에도 6299억원 적자를 냈다. 올해 연간 기준으로 1조원 이상의 손실을 예상하고 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