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러시아 일본 등이 연해주, 동북3성 등에서 인프라 확충과 공동 투자로 경협의 폭을 넓히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단편적 투자와 ‘하청’에만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한국경제연구학회(회장 이현훈 강원대 교수), 한국경제학회(회장 이인실 서강대 교수)는 27일 중국 옌지 옌볜대에서 ‘동북아 경제협력의 도전과 새로운 접근’을 주제로 옌볜대 국제콘퍼런스를 개최했다. 강원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북방경제협력위원회, 한국은행 등이 주관하고 한국경제신문사가 후원했다.발표자와 토론자들은 동북아 교통·물류 구도가 전환기를 맞이했다고 봤다. 중국, 러시아 등이 2000년대 들어 동북아 물류망에 대한 대규모 투자에 나섰는데, 최근 들어서는 국가 간 합종연횡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동북아에서 중·러 간 협업은 “역사상 전례없는 수준으로 긴밀하다”(안국산 옌볜대 조선반도연구원 경제연구소장)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과 러시아는 동북3성과 러시아 극동지방을 연결하는 네 곳의 교량을 건설하면서 그 첫 사례로 지난달 30일 중국 헤이룽장성 헤이허와 러시아 블라고베셴스크를 잇는 다리를 개통했다.최근 새로운 물류 벨트로 부상하는 북극해도 중·러·일의 밀월 움직임이 활발하다. 2014년 러시아의 자원개발 사업인 야말 프로젝트에 중국과 일본이 대규모 지분 투자를 한 데 이어 현재 2차로 추진 중인 액화천연가스(LNG)-3 프로젝트도 일본 기업이 20%가량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국은 쇄빙 LNG선 등 개별 사업 수주에 집중하고 있다. 권원순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할린 1·2프로젝트 등 러시아의 다른 규모 자원개발 프로젝트도 일본과 중국의 기업들이 대규모 지분투자에 나서는 동안 한국은 조선과 엔지니어링 분야의 하청, 재하청에만 집중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최근 동북아 물류 허브로 주목받는 북한 나진항도 중·러가 이미 선점했다. 개발이 완료된 3개 부두 중 1·2부두는 중국 기업이, 3부두는 러시아 기업이 임차해 운영 중이다. 나진과 러시아 하산을 연결하는 철도 프로젝트도 우리나라가 투자를 포기해 러시아가 주도하고 있다. 안국산 소장은 “한국은 전 정부에서 나진·하산 철도 프로젝트 투자 철회로 러시아를 실망시키고, 현 정부는 (중국을 제외한) 남·북·러 3각 철도 프로젝트를 내놔 중국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고 꼬집었다.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은 임기 내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바심을 버리고 동북아 물류·교역의 큰 관점에서 경협 청사진을 그려야 한다”고 말했다.옌지=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
“법인세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으로 기업 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제조업 르네상스’를 내건 것은 정부가 초조함을 드러낸 것이다.”(조장옥 서강대 명예교수)한국경제학회장을 지낸 경제학자들이 경제 부진 장기화를 우려하며 시장 중심의 대전환을 정부에 촉구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4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연 ‘기로에 선 한국경제, 전(前) 한국경제학회장들에게 묻는다’ 특별좌담회에서다. 조장옥 명예교수(46대), 구정모 대만 CTBC비즈니스스쿨 석좌교수(47대), 김경수 성균관대 명예교수(48대) 등 전직 경제학회장이 참석했다.올해 2월까지 경제학회장을 지낸 김 교수는 “2011년부터 한국 경제성장률이 2~3%대로 둔화하기 시작해 최근 이런 추세가 강화되고 있다”며 “생산성을 높이지 않으면 저성장 추세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강원대 교수를 지낸 구 교수는 “반도체 호황에 따른 착시와 정치적 실험, 역량 부족이 경제 부진의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정부 주도의 고용과 성장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잘못된 정책에 대한 반성과 과감한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구 교수는 “시장이 할 수 있는 부분까지 정부가 개입하려고 하면 안 되는데 고용이 바로 그러한 부분”이라며 “정부 주도의 고용과 성장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조 교수는 “최근 정부 정책은 고용과 성장뿐 아니라 주요 목표인 분배까지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다”며 “정책을 크게 전환하더라도 내년 후반기나 돼야 (경제 상황이)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정책 대전환은 소득주도성장의 폐기와 시장 중심, 성장 위주 정책으로의 회귀를 의미한다”며 “경제를 정상적으로 운용하면 ‘제조업 르네상스’ 없이도 2030년 1인당 소득 4만달러 달성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이들은 금리인하 시점이 이미 늦었으며, 추가경정예산의 정책 효과가 미진할 것이라는 데 의견을 함께했다. 김 교수는 “정부는 최근 경기 부진의 원인을 생산성 저하가 아니라 경기 순환 과정의 하강 국면으로 잘못 판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구 교수는 “올 상반기에 금리인하가 필요했고 하반기에도 추가적인 금리인하가 예정돼야 한다”고 말했다.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정부의 경제정책은 형평성을 강조하면서 경제학의 기본 개념을 도외시한 측면이 있습니다. 이럴 때는 학계가 나서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논쟁도 실종됐죠. 최저임금 대폭 인상과 주 52시간제 도입 등에 따른 부작용이 속출하는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경제와 산업, 과학기술, 외교안보 분야의 전문가 100여 명으로 구성된 민간싱크탱크 FROM100(대표 정갑영)이 지난 2년간 토론을 통해 한국 사회가 당면한 위기와 기회를 분석하고 해법을 제시한 《한국경제, 혼돈의 성찰》을 출간했다. FROM100은 한국경제신문사와 공동으로 지난 13일 서울 한국생산성본부에서 출판기념회를 겸한 세미나를 열었다.집필을 주도한 정갑영 전 총장은 “경제정책을 논의하는 공론장이 실종됐다는 문제의식에서 이번 책을 집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책엔 저성장 고령화 등 한국 경제가 직면한 문제점에 대한 각 분야 전문가 16명의 고민과 분석이 담겼다.정부와 국책기관, 학계의 토론 실종정 전 총장은 “정부의 획일적 평등주의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되레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5월 통계청이 발표한 1분기 가계동향조사에서 소득 1분위(하위 20%) 빈곤층 소득이 전년 동기 대비 줄어든 게 대표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빈곤층의 기초연금 등 공적이전소득이 근로소득을 추월한 게 더 큰 문제”라며 “근로소득보다 이전소득이 늘면서 경제 주체들이 스스로 발전하려는 ‘경제 마인드’까지 실종되고 있다”고 꼬집었다.그는 “진짜 문제는 정부가 제대로 된 토론 없이 무리한 정책을 밀어붙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거에는 정부와 국책연구기관, 학계 등의 유기적인 토론을 통해 이 같은 오류를 사전에 막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공론장이 실종됐다”며 “경제학적 관점에서 장기적인 분배 개선의 해법은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을 활발하게 하는 것밖에 없다”고 덧붙였다.그는 지금이라도 정부가 ‘형평성 지상주의’를 버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전 총장은 “최저임금 지역별 차등화 등 정부가 의지만 갖고 있다면 재정 투입 없이도 경제 상황을 개선할 정책은 많다”며 “장기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미래에 대비하는 정책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과학적 논의할 수 있는 공론장 복구해야”이날 세미나에선 “그동안 경제 현안에 침묵했던 경제학자들이 ‘경제정책의 혼돈’을 낳았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인실 한국경제학회장(서강대 경제학부 교수)은 “한국의 미래 대비가 취약한 데는 학계의 책임도 크다”며 “지금이라도 과학적인 논의를 기반으로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공론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경제 교육 행정 등 각 분야에 대한 전문가들의 정책 제언도 쏟아졌다. 박철성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정부는 고용, 교육 등 분야에서 문제가 불거지자 백화점식 종합대책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본질적, 구조적 문제를 외면하지 말고 칼을 대야 한다”고 말했다.최현정 아산정책연구원 글로벌거버넌스센터장은 “북핵 외에 미세먼지와 재난사고 등 각종 위협에 대처하려면 9·11 사태에서 미국이 보여준 것처럼 ‘유연한 종합특별대응’이 가능한 정부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규제와 관치, 교육감 직선제 도입으로 인한 교육의 정치화 등이 교육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며 “관 주도 교육정책의 틀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