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야♥♥ 커피 마시러 ㄱㄱ(고고(gogo)의 준말).’

자고로 사내연애란 예로부터 비밀스럽게 하는 거랬다. 박 대리(34)는 팀장이 손님과 자리를 비우기가 무섭게 여자친구 이 대리(31)에게 ‘카톡’을 보냈다. 그런데 이게 웬일. 팀장이 놓고 간 책상 위의 휴대폰이 몸을 떠는 게 아닌가. 수신자를 확인해보니 박 대리의 뜨거운 하트를 받은 상대방은 여자친구가 아니라 팀장이었다. 박 대리는 폰 주인이 자릴 비운 틈을 타 카카오톡을 열고 방금 보낸 메시지를 삭제했다. 잠시 후 책상으로 돌아온 팀장이 말했다. “박 대리, 연애 잘돼가?”

알고 보니 범인은 팀장의 컴퓨터. 폰에서는 메시지를 삭제했지만 PC엔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것이다. 박 대리는 “얼마 전에 이 대리와 결혼하며 팀장님께 축하를 받긴 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도 소름 끼치는 일”이라고 회상했다.

완벽한 인간은 없는지라 철두철미한 김과장 이대리도 실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가끔은 재치있는 임기응변과 신묘한 해결책을 꿈꿔보기도 하지만 직장생활이란 본래 만만치 않은 법이다. 직장 내 실수를 대하는 김과장 이대리들의 자세를 모아봤다.
일러스트=이정희 기자 ljh9947@hankyung.com
일러스트=이정희 기자 ljh9947@hankyung.com
실수하기 전에 예방하자

김과장 이대리들이 가장 빈번하게 저지르는 실수는 ‘방송사고’다. 애먼 채팅창에 엉뚱한 글을 올리는 사고를 말한다. 줄여서 ‘방사’라고도 부른다.

김과장 이대리가 선택한 해결책은 메신저 앱의 채팅창 배경을 바꾸는 것이다. 직장 상사가 있는 채팅방 배경을 붉은색으로 한다거나 ‘채팅 잘못 보내면 퇴사하는 방’이란 섬뜩한 글귀 가 적힌 배경화면으로 바꾸는 식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봉 대리(32)는 “동기들이 모인 채팅방은 배경을 ‘안전’을 뜻하는 녹색으로, 직장 상사나 선배가 있는 채팅방은 ‘위험’을 나타내는 빨간색으로 했다”며 “퇴사할 뻔한 일을 배경화면 덕분에 최소 한두 번은 면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교과서적인 방법이지만 평소 말하거나 채팅할 때 존칭을 빼먹지 않는 것도 방송사고에 대비하는 훌륭한 예방책이 된다. 언론사에 다니는 이 기자(35)는 “부장 삐지시겠다. 얼른 보고들 올려라”라는 메시지를 후배들이 있는 단체 채팅방이 아니라 부장에게 보내는 실수를 했다. 이 사실을 알고 이 기자가 당황하고 있는 사이 부장으로부터 “이미 삐지셨다고 전해라”는 답장을 받았다. 이 기자는 “혹시라도 메시지에 존칭을 달지 않았더라면 그 같은 재치있는 답장을 받을 수 있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외부로 공문이나 메일 등을 보내는 일이 많은 김과장 이대리들은 실수를 예방하기 위해 맞춤법 검사기를 끼고 산다. 워드프로세서가 기본으로 제공해주는 맞춤법 검사기능부터 상황에 따라선 유료 프로그램까지 사용한다. 무역업체에 다니는 장 과장(34)은 “팀장님이 미국 사람이어서 보고서를 영어로 올려야 하는데 그때마다 맞춤법 검사기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고 말했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박 과장(36)은 여권 만료 기간을 상시 확인할 것을 조언한다. 해외 출장을 가는데 여권이 만료되는 것만큼 황당한 상황도 없다는 것이다. 박 과장은 “보통 해외 국가에 입국하려면 기한이 6개월 이상 남아 있어야 한다”며 “미리 확인하는 게 가장 좋지만 만료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시간이 없다면 공항 외교부 영사민원서비스를 이용하면 된다”고 말했다.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필요 서류와 각종 요건을 활용해 공항으로 가면 1년 기한의 단수여권을 받을 수 있다.
일러스트=이정희 기자  ljh9947@hankyung.com
일러스트=이정희 기자 ljh9947@hankyung.com
실수했다면 빠르게 인정해라

예방에도 불구하고 실수를 저질렀을 땐 빠르게 이실직고하는 게 낫다는 김과장 이대리들의 솔직한 조언이다. 완성차 업체에 다니는 우 과장(37)은 “군대 문화가 직장 생활 문화에도 남아 있는 한국 특성상 이런저런 변명은 상사나 선배의 괜한 화를 돋울 뿐”이라고 말했다. 출판사에 다니는 홍 과장(36)은 “재치로 넘길 수 있을 만한 잘못이라면, 애당초 재치가 없어도 문제가 되지 않을 작은 실수”라고 말했다.

홍보대행사에 갓 입사한 이 사원(26)은 실수로 사명이 비슷한 두 고객사의 계약서를 서로 바꿔서 보냈다. 두 회사의 계약금은 두 배 차이가 났다. 낮은 계약금이 적힌 다른 계약서를 받은 고객사는 노발대발했다. 이 사원은 곧장 팀장에게 이 같은 사실을 보고하고 전화를 넘겼다. 팀장은 차분하게 서로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계약금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 응대했다. 팀장의 대처로 계약도 잘 마무리됐다.

이 사원은 “직장 노하우라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확인한 기회였다”며 “만약 곧장 잘못을 보고하지 않고 제 선에서 처리하려 했으면 사달이 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마트에서 영업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박 주임(29)도 곧장 실수를 시인한 덕분에 위기를 넘겼다. 지난해 여름의 일이다. 야근 중 물품 발주를 하다 실수를 했다. 구운 달걀 10판을 시켜야 하는데 ‘0’을 하나 더 붙여 100판을 주문했다. 박 주임은 혼자 앓는 대신 선배인 김 과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김 과장은 “마침 다이어트를 하려 했는데 잘됐다”며 달걀 두 판을 사갔다. 팀원들 에게 홍보도 자처했다. 박 주임은 “과장님이 팀원은 물론 옆 부서에도 구운 달걀을 팔아준 덕에 큰 손실로 이어지는 최악의 상황을 면할 수 있었다”며 “곧장 김 과장님에게 도움을 청한 그때의 내가 대견하다”고 말했다.

능력이 부족하면 솔직하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정보기술(IT) 업체에 다니는 박 과장(34)의 한 영업직 후배는 회사 차를 주차장에서 출차하던 도중 주차된 고급 수입차를 들이박았다. 보험처리를 했지만 꽤 많은 비용이 나왔다. 그 사건 이후 이 후배는 차를 뺄 때마다 운전 경력이 오래된 박 과장을 찾아와 ‘차 좀 빼주십시오’라고 부탁한다. “감사하다”며 박 과장에게 음료수나 커피를 내밀 때도 있다. 박 과장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는 만큼 실수를 빠르게 인정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게 선배들이 원하는 후배들의 모습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