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권의 호모글로벌리스 (24)] '우리'와 '나'
한국처럼 ‘우리’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사회도 드물다. 우리나라, 우리 가족, 우리 아빠, 우리 친구, 우리 회사…. 언젠가 미국에 사는 한 동포 아주머니가 ‘우리 남편(our husband)’이라고 했다가 “한국은 일부다처제 사회냐”는 질문을 받았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이에 비해 서구에서는 ‘나’를 주로 사용한다. 서구인들의 인식과 사고에서는 개인이 중심이다.

우리와 나의 차이는 집단주의와 개인주의의 단면을 보여준다. 네덜란드 사회심리학자 헤이르트 호프스테더는 지구상 여러 나라를 개인주의, 집단주의 사회로 구분하고 각국의 개인주의 지수를 측정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한국은 집단주의 문화에 속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를 ‘개인주의-집단주의’라는 이분법으로 단순 구분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는 상대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동양인은 상대적으로 집단의식이 강하다. 동양인은 개인이 상호 의존적인 존재이며,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과 조화를 이뤄야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공동체의 부분이며, 공동체 이익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이익은 희생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반면, 서양인은 개인을 독립적이고 주체적이며 자수성가하는 존재로 인식한다. 이런 개인주의가 서구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돼왔다. 서양인은 권리를, 동양인은 의무를 중요시한다. 의사결정 시 서양인은 개별 의사에 기초한 투표를 선호한다. 동양에서는 컨센서스(공동체 구성원의 일반적 동의)가 우선이다.

[박희권의 호모글로벌리스 (24)] '우리'와 '나'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차이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토머스 탈헬름 미국 버지니아대 교수는 밀농사와 쌀농사의 차이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쌀은 이웃 간에 협력을 필요로 하는 곡물이다. 공동체 구성원은 모내기, 관개, 수확 등 여러 단계에서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 반면, 밀은 자연적인 강우(降雨) 외에 별도의 관개시설이 필요 없다.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데 쌀농사와 같은 긴밀한 협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지구촌 곳곳에서 갈등과 충돌이 벌어지는데, 상당수는 문화적 요인 때문이다. 개인주의 문화권에서 성장한 ‘독립적인 자아’와 집단주의 문화권에서 성장한 ‘상호의존적인 자아’가 부딪치면서 긴장과 충돌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보자. 2015년 1월 초 프랑스 파리에서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테러가 발생했다. 이슬람교 창시자인 무함마드를 풍자한 만평을 실은 것에 불만을 품은 이슬람 지하디스트가 일으킨 사건이다. 개성과 자아를 중시하는 서구문화권에서 만평은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 그러나 극단 이슬람권에서는 자신의 종교와 가치에 대한 모욕이다. 나아가 무함마드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구성원들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를 기반으로 하는 집단주의와 ‘나’를 기반으로 하는 개인주의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각각 장단점이 있다. 우선, 집단주의 사회에서 구성원 간 조화와 공존은 바람직한 덕목이다. 우리 민족도 계, 두레, 품앗이, 향약과 같이 어려울 때 서로 돕는 문화적 전통을 갖고 있다. 반면, 21세기 글로벌 시대는 다원화된 수평사회다. 수평사회의 중심은 개인이다. 오늘날 자유민주주의 확산에 따라 개인의 자유와 기본적 인권이 빠르게 신장됐다. 성별, 계급, 종교, 신분의 차이에 따른 차별이 해소되고 개인의 능력에 따른 발전 가능성이 확대되고 있다.

개인과 전체의 조화·균형이 중요

집단주의든, 개인주의든 지나칠 때는 폐해를 낳는다.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패거리 문화가 형성되기 쉽고 지연이나 혈연이 사회를 지배한다. 획일적, 권위주의적 분위기 때문에 개인의 개성이나 능력이 발휘되기 힘들다. 반면, 극단적 개인주의는 편협한 이기주의에 빠지기 쉽다. ‘공유지의 비극’이 그 예다.

어떻게 하면 집단주의와 개인주의의 균형을 유지할 것인가. 베른에 있는 스위스 연방정부 건물의 천장에는 ‘UNUS PRO OMNIBUS, OMNES PRO UNO(one for all, all for one)’라는 국가 좌우명이 새겨져 있다. 19세기 큰 홍수가 났을 때 이 슬로건을 내세워 복구를 위한 연대와 단합을 호소했다. 이후 이 슬로건은 스위스의 국가 모토로 자리잡았다. 미국의 1센트와 5센트짜리 동전에는 ‘E PLURIBUS UNUM(out of many, one)’이라는 건국이념이 새겨져 있다. ‘여럿이 모여 하나’라는 뜻이다. 연방국가인 미국은 13개 주가 모여 국가를 이룬 건국 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 문구를 국가 인장에 넣었다. 현재는 다양한 민족, 인종, 종교가 모여 미국이 성립됐다는 의미로 쓰인다.

스위스와 미국의 모토와 같이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개인이 전체를, 전체가 개인을 위해 노력하는 사회가 이상적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배타적이지 않은 집단의식과 이기적이지 않은 개인의식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엇보다도 성숙한 시민의식과 다양한 사고 및 가치에 대한 이해와 관용이 중요하다.

박희권 < 글로벌리스트·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