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사진)이 17일(현지시간) 워킹그룹(실무그룹) 등을 통한 한국과 미국의 대북정책 공조를 ‘굴레’라고 밝혀 파장이 예상된다. 정 전 장관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미국을 방문 중인 정 전 장관은 이날 워싱턴특파원들과 만나 “우리 정부가 미국에 강력하게 (한·미 연합훈련 중단에 대해)얘기했으면 좋겠는데 워킹그룹에서 (훈련에) 합의를 해줬으니까 그렇게 된 거 아니겠느냐”며 “한·미 워킹그룹이 앞으로 아마 한국의 독자적 대북정책을 상당히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한·미 연합훈련 중단과 미·북 실무협상 재개를 연계한데 대한 견해를 밝히면서다. 워킹그룹은 북핵 협상에서 한·미 공조를 위해 지난해 11월 출범했다. 한국측 대표는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미국측 대표는 미·북 실무협상을 총괄하는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다.

정 전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8·15 경축사에서 ‘남북관계 발전은 북·미관계 개선의 종속변수가 아니라고 했다”며 “이후 워킹그룹을 만들었다고 해서 ‘결국 (미국과)2인3각으로 묶이는구나, 맘대로 못하겠구나’ 생각했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 선행론’을 펴자 미국이 워킹그룹을 통해 이를 견제하려 했다는 뜻이다.

이어 “1990년대 중반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에도 대북정책에 대한 한·미공조가 한국 정부의 독자적 행보를 제약했다”며 “명분상 거역할 수는 없는데 공조가 결국은 굴레가 돼 가지고, 한국 정부가 좀 독자 목소리 낼 때 (미국측에서)‘왜 딴소리하느냐’고 한 역사가 있었다”고 했다.그러면서 “이번에도 워킹그룹이, 한·미 공조라는 것이 결국 우리의 독자적인 행보를…(제약한다)”고 비난했다.

정 전 장관은 또 “같이 가려면 북한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들하고 가야 되는데 북한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공조를 꼭 해야 되는가”라며 “제가 현재 정부에 있지 않기에 하는 얘기”라고도 했다. 미국의 대북 전문가들이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 전 장관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16,17일 워싱턴DC 소재 한미경제연구소(KEI)와 공동개최한 비공개 오피니언 리더 세미나 참석차 미국을 방문했다.

정 전 장관은 지난 3월 미·북 정상회담 결렬 배경으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목하며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매우 재수없는 사람”이라고 비난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정 전 장관은 “(하노이)정상회담 둘째날 확대정상회담에서 볼턴 보좌관이 배석한 것이 회담 결렬의 신호였다”며 “그 사람을 보면 인디언 영화에 나오는, 인디언을 죽이면서 양심의 가책없이 잘했다고하는 백인 기병대장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