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신약개발, 실수와 실패 용인하는 사회여야
미래학자인 미치오 가쿠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는 “실수 없는 연구 성과란 있을 수 없다. 실수를 용인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부(富)의 창출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한국 제약·바이오산업은 지금 치명적인 독감을 앓고 있다. 회복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논란, 코오롱생명과학의 ‘인보사’ 허가 취소, 한미약품의 신약 기술 수출 무산 등 악재가 연이어 터졌다.

삼성바이오 사건은 국제기업회계기준 적용 과정에서 보여준 감독기관의 몰이해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나, 인보사 허가취소는 1999년부터 신물질 개발을 시작해 쌓아올린 18년 공든탑을 무너뜨리는 선고인 것 같다. 인보사는 골관절염 치료제로 개발된 주사제다. 세포유전자 치료제라는 점에서 세계 최초다. 이 제품은 2017년 11월부터 약 3700명의 환자가 이용했는데, 최소 1년간은 통증 및 구조개선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 3일 인보사에 대해 품목허가 취소 처분을 확정했다. 인보사의 주요 성분 중 허가 내용과 다른 물질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환자, 주주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고 코오롱은 식약처의 조치가 과도하다면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인보사는 1액(사람 연골세포)과 1액 세포를 활성화하기 위한 유전자를 발현하도록 하는 전달체 성격의 세포인 2액을 3 대 1로 혼합해 환자에게 투여하는 주사제로 애초 식약처에 신고했다.

그런데 코오롱 측은 최근 2액이 연골유래세포가 아니라 신장유래세포인 것을 발견했다. 코오롱은 이를 식약처에 자진 신고하고 자발적으로 판매 중지조치를 취했지만 식약처는 당초 신고된 성분과 다르다는 이유로 판매허가를 취소했다. 왜 유래세포가 바뀌었는지는 추측만 분분할 뿐이다. 초기 연구개발단계에서 신약개발단계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두 세포들의 혼입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식약처는 코오롱 측의 고의를 의심한다. 코오롱은 고의성이 없다고 항변하면서 허가취소는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고의든 과실이든 과학을 다루는 회사로서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생긴 것이기에 비난받을 여지는 크다.

그러나 잠시 열기를 식혀야 한다. 신약개발 경험이 없는 회사가 시행착오 없이 세계 최초의 약을 개발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바이오산업 분야는 첨단 중의 첨단 산업이다. 그만큼 실수와 실패가 많을 수밖에 없다. 세계의 신약 개발 과정에서 실수와 실패를 이겨내고 성공한 사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미국에서도 세포주 유래변경으로 임상이 중지됐다가 재개된 사례가 있다. 미국의 히트바이오로직스가 2016년 방광암 세포치료제에 방광암 유래세포가 아닌 전립샘암 유래세포가 들어간 것을 뒤늦게 발견했지만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임상 중단 8일 만에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면서 임상재개를 허가했다. 인보사의 경우는 최초 임상시험 후 현재까지 11년간 심각한 부작용 사례는 없었다고 한다.

허위자료 제출에도 회사의 고의는 없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회사가 18년간 일부러 감췄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들통날지 모르는데 연구개발에 수천억원을 투자할 회사가 있겠는가. 최근에 회사가 대량 생산을 위한 큰 공장까지 준공한 것을 보더라도 고의성을 추단하기 어렵다.

코오롱 측은 FDA에 인보사의 임상재개를 위한 자료를 곧 제출한다고 한다. 한국 바이오산업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는데 최소한 미국 임상재개 여부를 기다리고 오류 수정을 모색해 볼 정도의 관용도 베풀 수 없는 것인가.

실패와 실수에 대해 문책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18년간 이어온, 그것도 식약처 스스로 안전성과 유효성을 인정해온 신약 개발 노력을 무위로 돌리는 건 우리 사회의 경직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혁신의 정신과 아이디어는 실수를 통해서 더욱 발전할 수 있다”는 미치오 가쿠 교수의 말을 되새겨 봐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