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투기꾼만 웃게 할 분양가상한제 확대
지난해 ‘9·13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이후 하향 안정세를 보이던 주택시장이 최근 서울 아파트값을 중심으로 34주 만에 상승세로 돌아서자 정부는 주택 분양가상한제를 민간택지까지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기존에도 민간 아파트에는 분양가 수준에 따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대출규제가 적용돼 간접적인 분양가 통제를 받아왔다고 할 수 있다. 향후 분양가상한제가 민간택지에도 확대 적용돼 정부 기대처럼 투기적 주택 수요가 진정되고 주택가격이 안정된다면 더 바랄 게 없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주택시장의 안정성에 미칠 효과와 부작용도 고려해야 한다.

첫째, 최근의 주택가격 상승은 주택시장 내부적인 요인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생산, 수출, 고용, 투자, 이자율 등 거시경제적 요인과 인구사회학적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인구 고령화에 따라 안정적인 노후자금 수요는 증가하는 반면 산업 경쟁력의 저하 및 구조조정에 따른 주식시장 침체와 저금리로 인한 예금 채권 등 전통적인 투자종목의 수익률이 떨어지고 있어 실물자산에 대한 선호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수익률을 높여줄 대체투자처를 찾는 각종 연기금은 계속 늘어나고 있고, 적절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시중 부동자금도 1200조원을 웃도는 상황에서 확실한 가격 상승이 예상되는 투자처(유망지역의 신규 아파트)로 수요가 몰릴 수밖에 없다.

둘째, 주택시장 내부를 보더라도 재개발, 재건축이 억제되는 상황에서 기존 주택은 시간이 흐를수록 낡아 주거의 질에 대한 선호와 괴리가 커진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개별적인 주택 수리 및 리폼이 원활하다면 변화하는 수요에 어느 정도 맞춰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존 공동주택에서는 한계가 있고 더 근본적으로는 재건축, 재개발을 통해서만 주택 수급의 질적 부조화를 해결할 수 있다. 따라서 수요자들은 재고 주택보다 신규 주택에 관심을 두게 되고, 신규 주택 중에서도 원격지에 개발된 주택보다는 기존 도시 내 유망지역의 신규 주택을 선호하는 것이다. 이것이 주택보급률이 100%를 상회해 공급이 넘쳐도 새로운 주택이 팔리는 이유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호하는 입지에 신규 주택 공급이 억제된다면 그런 지역의 신규 주택 분양가격이나 재건축이 기대되는 기존 주택의 매매가격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실거주자가 아닌, 투기자들이 이런 지역과 유형의 주택에 몰리는 이유도 결국은 실수요자가 그런 주택을 선호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건축 규제로 이런 주택의 공급을 줄이는 상황에서 분양가상한제까지 더해진다면 사업성이 악화돼 공급량이 더욱 감소하면서 분양 경쟁률은 더 높아지고 실수요자들의 주택 구입 기회도 그만큼 더 줄어들 것이다. 결국 유망지역의 분양시장은 눈치경쟁이 난무하는 ‘로또 아파트’가 될 것이며 은행 융자가 필요없는 투기자에게 훨씬 더 열린 시장이 될 것이다.

넷째, 그간의 경험으로 볼 때 주택 투기를 억제하기 위한 정책은 수요와 함께 공급도 줄이는 결과를 보였다. 결국 거래량이 급감하며 시장은 동결되고 가격도 잠시 잠잠해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수요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으므로 시간이 지나면 수요와 공급 간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주택시장의 변동성을 확대할 것이다. 수요의 압력을 어느 정도 조절해주지 않으면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폭등 혹은 폭락)하는 시장으로 변모될 것이다. 그런 자극은 총선과 같은 정해진 정치 일정이나 예상치 못한 국제적인 경제 충격일 수 있다.

바람직한 주택가격 수준과 상승 속도에 관한 원칙과 철학 없이 주간 단위로 파악되는 가격동향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정책결정자의 태도가 아니다. 정부는 더욱 넓고 장기적인 시각에서 긴 호흡으로 주택시장에 접근해야 한다.

한국은 주택정책에 관한 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실험을 해왔다. 결국은 주택 공급을 지연하거나 축소하고, 로또 아파트를 양산해 실수요자의 기회를 박탈했던 과거 정부의 분양가 규제 경험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