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불법으로 운영되는 노점상을 합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취지에서 올초부터 시행하고 있는 ‘거리가게 허가제’가 주변 전통시장 상인과 노점상 간 갈등으로 삐걱거리고 있다. 민주노점상전국연합·전국노점상총연합(민주노련·전노련)의 반발에 부딪혀 재산 상한 및 업종제한 규정 등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차료를 부담하는 시장 상인들은 노점상과의 가격 경쟁에서 불리한 상황을 감수해야 하는데 ‘기준 미달’의 노점상에게까지 혜택이 돌아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서울 제기동 경동시장에 있는 한약방 좌판과 노점에서 한약재를 팔고 있다.  /오현우 인턴기자
서울 제기동 경동시장에 있는 한약방 좌판과 노점에서 한약재를 팔고 있다. /오현우 인턴기자
노점상 특혜 논란

서울시는 불법 노점상을 단속하는 대신 허가제를 통해 관리하고, 보행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7월 ‘거리가게 허가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보행환경이 열악한 지역으로 꼽힌 △영등포구 영중로 △중랑구 태릉시장 주변 △동대문구 제기역~경동시장 로터리 등이 시범사업 대상이다. 기존 노점을 철거한 뒤 판매대를 새로 설치해 운영을 허가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운영 자격이다. 서울시에서 관리하는 가로가판대는 운영자 재산 상한을 순자산 보유액 3억원 미만으로 정하고 있다. 하지만 거리가게 허가제 가이드라인에선 노점 단체의 반대로 재산 기준이 빠졌다.

가이드라인에서 정한 기준이 없으니 자치구마다 상황이 다르다. 영등포구는 재산이 4억원 미만인 노점상에게만 운영권을 내줬다. 지난 3월 철거한 불법 노점 45개 중 15개는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판매대 영업 허가가 나지 않았다. 탈락한 노점상 일부는 영등포역 앞에 천막을 설치하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동대문구는 재산 기준을 정하지 않았다. 대신 지난달 민주노련과의 협약을 통해 승계 조건으로 재산 대신 소득 기준(기준중위소득 50% 이내)만 두기로 했다.

민주노련은 1년마다 거리가게 허가를 갱신해야 하는데 그사이 아파트 등 자산 가격이 올라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임차료를 내기 어려운 형편인 노점상의 영업을 허가한다는 정책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중랑구 태릉시장 상인 A씨는 “임차료를 부담할 경제적 여건이 되는데도 탈세 목적으로 노점을 운영하는 사람도 있다”며 “이런 사람들에게까지 혜택이 돌아간다면 세금 내고 임차료까지 내는 상인들을 바보 취급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통시장·노점상 갈등 부른 '서울 거리가게 허가제'
“노점상과 가격 경쟁 어려워”

노점과의 가격 경쟁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란 주변 시장 상인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동대문구 거리가게 시범사업 지역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약령시장 상인들은 기존 합의가 무시됐다며 반발하고 있다.

서울약령시협회는 민주노련과의 협상을 통해 노점에서 한약재를 판매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동대문구는 새로 조성하는 거리가게에서 주류 판매만 금지하고, 한약재 등 판매는 제한하지 않기로 했다. 강경태 서울약령시협회 사무국장은 “가로변은 상가 임대료만 3.3㎡당 25만원에 달한다”며 “노점상이 같은 제품을 팔면 가격 경쟁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거리가게는 연간 도로점용료(공시지가의 0.7%)와 판매대 사용료(시설물 가격의 7%)만 부담하면 된다. 동대문구 시범사업지 대로변에 인접한 토지(제기동 1140의 15)의 ㎡당 공시지가(1180만원)를 기준으로 하면 연간 62만원의 도로점용료(최대 점용공간 7.5㎡ 기준)와 판매대(1000만원 상당) 사용료 70만원만 구청에 내면 되는 셈이다.

추가영 기자/오현우 인턴기자 gyc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