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명예영사단은 최근 정기총회를 열어 양인모 주한 크로아티아 명예영사(78·현 영사단 감사·사진)를 제6대 단장으로 만장일치 선임했다. 1972년 창설된 영사단은 102개국 정부가 임명하고 우리 정부가 인가한 127명의 명예영사 모임이다. 임명국과 한국의 관계 증진, 우의 강화와 협력 확대를 위한 민간 및 공공 외교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린골츠의 음반을 듣고 자랐습니다. 그와 함께 서는 무대이기에 어느 공연보다 뜻깊어요.”주목할 젊은 바이올리니스트로 꼽히는 양인모(23)는 15일 서울 광화문 금호아트홀의 ‘상주음악가 매치포인트’ 공연을 앞두고 이같이 말했다. 이번 공연은 세계 최고의 바이올린 콩쿠르로 평가받는 프레미오 파가니니 국제콩쿠르에서 1위에 오른 두 명의 바이올리니스트가 펼치는 무대다. 17년 전인 1998년 우승한 일리야 그린골츠(37·스위스 바젤 국립음대 교수)와 2015년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양인모가 그 주인공이다. 올해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로 선정돼 총 다섯 번의 상주음악가 시리즈 무대를 준비한 양인모는 마지막 무대의 파트너로 일리야 그린골츠를 택했다. 국내에서 파가니니 콩쿠르 우승자 두 명이 함께하는 공연 역시 이번이 처음이다.두 사람에겐 묘한 공통점이 있다. 그린골츠는 파가니니 콩쿠르 역사상 최연소인 16세에 우승을 차지했다. 어린 나이에도 섬세한 해석과 끊임없는 도전정신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으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성장했다. 그가 우승한 지 7년 뒤인 2005년부터 파가니니 콩쿠르는 1위 없는 2위만 배출할 뿐 우승자를 뽑지 않았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2015년 약관(20세)의 나이에 한국인 최초로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1위를 거머쥐며 10년간의 콩쿠르 ‘1위 갈증’을 깬 사람이 바로 신예 양인모였다. 당시 미국 언론사인 보스턴글로브는 “흠잡을 데 없는 기교와 부드럽고 따뜻한 음색, 내면의 진솔함을 연주로 표출해내는 능력이 있다”고 호평하기도 했다.공통점은 또 있다. 그린골츠는 우승 이후인 1999년 도이치 그라모폰 레이블을 통해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24개 전곡 앨범을 내놨다. 양인모도 그와 마찬가지로 도이치 그라모폰과 손잡고 지난 5일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24개 전곡 연주 실황을 데뷔 음반으로 담았다. 유럽 콩쿠르에서 우승했지만 그린골츠는 미국 줄리아드음악원에서 공부했고, 양인모도 현재 미국 뉴잉글랜드음악원에서 공부하는 등 유럽이 아닌 미국에서 학업을 이어가고 있는 점 역시 비슷하다.두 사람 모두 18세기에 제작된 바이올린을 주력 악기로 쓰고 있다는 점도 공통분모다. 양인모는 뉴잉글랜드음악원의 후원으로 요제프 요아힘이 브람스 협주곡을 초연할 때 사용한 1714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요아힘-마’로 연주한다. 그린골츠 역시 1742~1743년께 제작된 주세페 과르네리 ‘델제수’ 바이올린을 빌려 쓰고 있다.공통점만큼이나 두 사람의 인연도 깊다. 어린 시절부터 그의 파가니니 카프리스 앨범을 듣고 자란 양인모는 2014년 예후디 메뉴힌 콩쿠르에서 심사위원으로 참석했던 그린골츠를 만났다. 양인모는 “연주를 마친 뒤 그린골츠로부터 ‘파가니니 카프리스 1번이 매우 인상적이었다’는 보기 드문 칭찬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때의 좋은 기억을 가슴에 담아뒀던 양인모는 상주음악가의 마지막 무대로 바이올린 듀오 연주를 떠올리면서 그린골츠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두 사람의 만남은 성사됐다.이들은 뛰어난 기교파 바이올리니스트로 손꼽힌다. 섬세한 해석으로 유명한 그린골츠와 거침없는 카리스마를 가진 양인모가 고난도의 기교를 요구하는 비르투오소(예술의 기교가 뛰어난 연주자)적인 프로그램들로 바이올린의 팽팽한 긴장감을 선보일 예정이다. 1부에선 프로코피예프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와 버르토크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44개의 듀오’ 중 일부, 비에니아프스키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8개의 연습곡’ 중 일부를 차례대로 선보인다. 2부에선 기교와 정서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곡으로 평가받는 이자이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를 들려준다.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가 자신의 데뷔 앨범 ‘파가니니 : 24개의 카프리스’를 5일 발매했다. 유니버설뮤직 산하의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을 통해 제작된 이번 음반은 지난 5월 3일 서울 광화문 금호아트홀에서 열린 공연을 실황으로 녹음한 앨범이다.양인모는 2015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54회 프레미오 파가니니 국제 바이올린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했다. 파가니니 콩쿠르는 살바토레 아카르도, 기돈 크레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등 거장 바이올리니스트들을 우승자로 배출한 세계 최고의 바이올린 콩쿠르 중 하나다. 당시 이 콩쿠르에서 우승자가 나온 것은 2006년 이후 9년만이라 세계 클래식계는 양인모를 더욱 놀라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지휘자 파비오 루이지는 그에 대해 “직관적인 연주자다. 그의 파가니니는 흥미롭고 품위있다”고 호평했다.파가니니가 자신을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만든 음악가였던 만큼 양인모는 데뷔 앨범으로 그의 ‘24개의 카프리스’를 과감히 선택했다. 이날 서울 광화문 문호아트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어릴 때부터 파가니니는 대단한 존재였다. 일곱 살 때 음악을 처음 들으면서 희열을 느꼈다”며 “단순한 우상을 넘어 내게 청중과 소통의 장을 마련해주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예전엔 파가니니의 기교적인 화려함에 매료됐다면 이젠 이 음반을 통해 파가니니의 인간적인 면모를 더 전달해 보고 싶다”고 덧붙였다.그의 바이올린 인생은 처음부터 파가니니와 관계 맺고 소통하는 시간이었다. 그는 “상당수는 파가니니 곡을 콩쿠르나 시험준비곡으로 생각해 ‘어렵고 싫증 난다’며 경멸했지만 나는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즐거웠다. 처음부터 그와 관계가 좋았다”며 “콩쿠르에 우승하면서 ‘내가 파가니니를 잘 할 수 있구나’라는 자심감도 생겼다“고 말했다.지난 5월 연주했던 24개의 카프리스 중 그가 가장 애착을 가졌던 곡은 무엇이었을까. 망설임 없이 1번과 24번을 꼽았다. 양인모는 “어릴 때 처음 이 음반을 접했을 때 1번을 들은 뒤 너무 화려하고 좋아서 2번으로 넘어가지 못한 채 반복해 들었다. 그만큼 첫 인상이 좋았다”며 “24번은 다아는 곡이기에 남들과 다르게 독창적으로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만든 곡이었다”고 설명했다.‘인모니니’라는 팬들의 별명을 얻을 정도로 파가니니 곡 연주에 있어선 탁월한 그이지만 힘들었던 곡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바로 1부 마지막곡인 12번이다. 그는 “12번까지 하고 1부를 쉬는데 9~11번까지 모두 연주하기 어려운 곡이라 마지막 12번은 이상하게 더 길게 느껴졌다”며 “체력적으로도 가장 힘들고 집중도도 떨어졌던 부분”이라고 털어놨다.파가니니에 집중해 온 양인모가 다음 작품으로 선택한 작곡가는 로베르트 슈만이다. 그는 “바이올린 곡이 많지 않고 소나타 3개, 협주곡과 소품정도가 있다”며 “슈만의 음악에 집중해 연구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그는 어린시절 듣고 자랐던 앨범의 주인공이자 1998년 16세의 최연소 나이에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우승했던 바이올리니스트 일리야 그린골츠와 오는 15일 금호아트홀에서 바이올린 듀오 연주회를 연다. 올해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로 선정된 뒤 갖는 마지막 공연이다. 기교와 음악성 면에서 막상막하의 완벽함을 자랑하듯 연주회 이름도 ‘매치 포인트’로 정했다.양인모는 “지난 2014년 메뉴힌 콩쿠르의 심사위원이었던 그로부터 ‘카프리스 1번이 매우 인상적이었다’는 극찬을 받았던 좋은 기억이 남아있다”고 웃었다. 공연에선 프로코피예프의 소나타, 버르토크의 듀오곡과 일리야 그린골츠의 바이올린 듀오 음반에 담긴 비에니아프스키의 카프리스를 차례대로 연주한다. 2부에선 기교와 정서가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고 평가받는 이자이의 두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를 통해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줄 예정이다.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크로아티아는 조선산업과 정보기술(IT) 강국인 만큼 유럽 진출에 관심있는 한국 기업들은 현지에 전진기지를 마련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양인모 전 삼성엔지니어링 부회장(78·사진)은 24일 크로아티아에 대한 폭넓은 식견과 깊은 애정을 아낌없이 보여줬다. 그는 이날 주한 크로아티아대사관 개관식에서 크로아티아 정부로부터 국가 최고 유공훈장인 ‘안테 스트랄체 비치’를 받았다. 자타가 공인하는 크로아티아 전문가로 꼽히는 양 전 부회장은 1976년 이후 40여 년간 꾸준히 크로아티아와의 인연을 유지해왔다. 특히 2007년부터 11년간 서울에서 크로아티아 명예총영사로 활동하며 주한(駐韓) 크로아티아 대사 역할을 대신했다. 크로아티아 정부는 한국에서의 영사 업무가 상대적으로 적고, 대사관 운영비 부담도 작지 않다는 이유로 그동안 주(駐)일본 크로아티아 대사가 한국 공관장직을 겸임하게 했다. 양 전 부회장은 크로아티아 명예총영사로 한국에서 열린 크로아티아 관련 공식·비공식 행사에서 주일본 대사를 대신해 행사를 주관했다.“한푼 못 받고 ‘뒷바라지’할 일만 많습니다. 그래도 한국과 크로아티아 양국을 대표한다는 사명감으로 일하다 보니 훈장을 다 주네요.”양 전 부회장은 2007년 명예총영사를 맡은 뒤 따로 집무실을 마련하고 상주직원을 고용해 비자 발급 등의 업무를 했다. 현지에서 방한 사절이 오면 식사를 대접하고 면담을 주선하는 일 등도 그의 몫이었다. “한국의 전직 대통령들이 돌아가셨을 때 크로아티아 정부를 대신해 조문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그는 명예총영사로 있으면서 가장 보람된 일로 크로아티아 인지도를 높인 것을 꼽았다. 크로아티아가 TV 방송 등을 통해 인기 관광지로 떠오르면서 지난달엔 인천~크로아티아 자그레브까지 가는 직항 정기 노선도 생겼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에서도 직항 노선은 처음이다.양 부회장이 처음 크로아티아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76년 삼성물산 독일지점장으로 발령받은 뒤부터다. 그는 사업차 당시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이었던 크로아티아를 처음 방문했다가 크로아티아의 아름다운 풍경과 친절한 사람들에게 반했다. 1966년 중앙일보 기자로 입사해 삼성그룹맨이 된 양 전 부회장은 이병철 전 그룹회장 비서실에서 5년간 근무한 뒤 뉴욕지사장, 독일지점장, 삼성물산 부사장, 삼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와 부회장을 거쳐 2004년 퇴임했다. 그는 퇴임 후 크로아티아 정부 요청으로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양 전 부회장 전임 크로아티아 명예총영사)의 뒤를 이어 2007년 명예총영사 자리를 맡았다.크로아티아는 최근 한국과의 관광 무역 등 교류가 늘어나면서 이날 대사관을 개관했다. 양 전 부회장은 “크로아티아는 내전에 오래 시달리던 인구 450만 명의 작은 나라지만 사회주의 체제에서 벗어나 유럽연합(EU)이라는 큰 틀에서 정체성을 갖고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며 “크로아티아를 발판으로 유럽대륙에 진출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만하다”고 말했다.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