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견(楊堅)이 북주(北周)를 무너뜨리고 수(隋)나라를 세울 580년 무렵이었다고 한다. 양견에게 쫓겨난 북주의 대신 두의(竇毅)에게 딸이 하나 있었다. 용모와 재주가 뛰어났고 용맹함마저 갖췄다고 한다.

두의는 이런 딸을 시집보내려 아이디어를 하나 냈다. 공작(孔雀) 그림이 있는 병풍을 세워두고 먼 거리에서 공작의 두 눈을 화살로 쏘아 맞히는 사람에게 딸을 준다는 소문을 냈다. 아주 많은 사람이 와서 도전했지만 죄다 실패했다.

드디어 한 사람이 찾아와 정확하게 공작의 눈을 맞혔다. 이연(李淵)이라는 사람이었다. 뒤에 당(唐)나라를 세운 고조(高祖)다. 두씨(竇氏) 부인은 당나라 최고 전성기를 이끈 태종(太宗) 이세민(李世民)의 생모다.

그런 맥락에서 과녁의 뜻으로 등장한 글자가 目(목)이다. 그다음에 的(적)을 붙이면 目的(목적)이라는 단어를 이룬다. 的(적)은 과녁의 중심이다. 전체 과녁을 가리켰던 글자는 본래 侯(후)다. 이 글자 안에 화살을 지칭하는 矢(시)가 들어 있음에 주목하자. 초기 글자꼴을 보면 펼쳐진 과녁에 화살이 날아드는 모습이다. 따라서 초기 이 글자의 새김은 과녁이다. 射侯(사후)는 과녁을 맞히는 일, 나아가 그런 예법을 일컫는다.

과녁의 핵심을 일컫는 한자어는 또 있다. 正鵠(정곡)이다. 여러 해설이 있어 정확하게 특정하기가 조금 어렵다. 일반적으로는 베 등 직물에다 그린 과녁의 핵심을 正(정), 가죽에다 그린 과녁의 가운데를 鵠(곡)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正鵠(정곡)이라고 하면 과녁의 가장 중간, 핵심의 목표다.

과녁이라는 말 또한 한자어 貫革(관혁)에서 왔다. 화살로 겨냥해 가죽의 가운데를 뚫는 일이었다가 결국 지금의 말로 자리잡았다. 모두 타깃을 설정해 정확하게 겨냥하며 쏘는 일이다.

그런 ‘목적’이 분명하지 않으면 지향(指向)을 놓친다. 제가 이루는 업(業)의 방향을 잃으니 행위가 부실해지다가 결국 망조(亡兆)에 접어든다. 나라 지키는 군대가 그 지경이라면 심각하다. 삼척에 북한 선박이 닿을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한 지금의 우리 군대가 꼭 그 경우다.